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11
출국 일자가 정해지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만나서 밥 한 끼 사주겠다 했다.
못 먹고 살아온 세대도 아니고 고생이 훤한 길을 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얼굴 보고 밥 먹자 말하는 한국인 특유의 속정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시간을 맞추고 만났다.
매일매일 식사약속을 잡다 보니 출국 전날 점심 약속까지 꽉 찼다.
“자네, 이민 가? 1년 동안 소식 한 번 주고받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누가 보면 너 이민 가서 영영 안 오는 줄 알겠어. 1년이라 갔다 싶으면 돌아올 텐데 너무 호들갑 아니야?”
내가 봐도 좀 민망하다 싶을 정도였다.
내가 없으면 밥 못 챙겨 먹을 사람은 남편인데 말이다.
하지만 20년 동안 매일매일 오늘은 머 해 먹지? 의 고민을 해 온 입장에서 지금 심정으로는 나도 혼자 살면 밥 안 해 먹을 거 같긴 하다. 귀찮아서.
주부의 이런 심정을 알기에 다들 나 밥 먹일라 하는 걸까?
서너 개의 식사약속을 클리어하고 또 하나의 점심약속을 실행하던 중 큰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배가 아파서 내과에 왔는데 맹장염이래. 어떡하지?”
며칠 전부터 배가 아팠다 가라앉았다 했는데 아무래도 잘 낫지 않아서 알바 가는 길에 병원에 들러 초음파와 시티촬영까지 했는데 맹장염이라서 외과로 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일단 별로 아프지 않다고 하길래 ktx 타고 엄마한테로 오라 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려면 시간도 걸리고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복잡하니 나온 김에 집에 들를 필요 없이 바로 서울역으로 가 내려오라고.
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몇 년 전 남편이 맹장수술을 했던 병원으로 가서 내과에서 받아온 결과지를 내고 접수를 했는데…
원장님한테 혼났다.
이미 2~3주 전에 맹장은 터져서 뱃속이 고름으로 꽉 찼고 염증이 많이 번져 있다며 그동안 꽤 아팠을 텐데 왜 참고 있었느냐고 했다.
딸아이 말로는 하루 정도 죽을 만큼 아팠지만 그 뒤로는 별로 안 아팠단다.
따로 살고 있기도 했지만 지난 주말 시골 친정집에서 모두 만나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고 잘만 놀았고, 어제는 체육관에 가서 역기를 들며 기록을 쟀다길래 아이가 아픈 걸 전혀 몰랐다.
(큰 애는 취미로 역도를 하고 있다.)
일단 복강경으로 맹장과 고름을 제거해야 하는데 대장이나 소장, 난소 등에 가깝게 고름이 퍼져 있어서 심할 경우 일부만 제거하고 6주 정도 약물치료를 한 뒤 다시 재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종합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쉽지 않은 수술이 될 거라고 했다.
두 시간 정도 수술을 했다.
일반적인 맹장수술 시간이 30분 내외인 것을 보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수술이 깔끔하게 끝나서 잘 회복하면 두 번 수술하지는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입원실에 누워 아파하는 딸을 보며 안타깝지만 어이가 없었다.
저거 저거, 순한 거야 둔한 거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병원에서 딸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남은 약속들을 모두 취소했다.
자금이라도 알았으니 망정이지 더 늦었으면 어쩔 뻔했나.
내가 출국하고 없을 때 아팠으면 어쩔 뻔했나.
짐도 안 싸고 싸돌아 다니는 엄마 앉혀놓고 차분히 있다 가라고 딸내미가 잡아두는 모양이다.
원래는 토요일에 딸네집에 가서 서울에 사는 친구들 만나고 놀다가 화요일에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그냥 여기서 출국날 바로 공항으로 가야겠다.
마침 오늘 종강한 막둥이가 주말에 집으로 온다고 한다.
나 가기 전까지 네 식구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게 됐다.
아, 나의 일본 유학길은 가기 전까지 참으로 스펙터클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