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왜 그래?

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12

by 히토리

우리 엄마는 참 쌀쌀맞은 사람이다. 말도 어지간히 안 이쁘게 해서 우리 가족은 엄마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반찬이 좀 짜다 싶어 말하면 표독스럽게 반찬그릇을 치우며 먹지 마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하고 말하는 사람, 날이 추워 춥다 말하면 겨울이 춥지 그럼 덥니? 하며 말문을 싹독 자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날 선 말들은 항상 아버지와 나, 남동생, 이모들 같은 가까운 가족에게만 겨누어졌고 남들에게는 세상 착하고 바지런하고 정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동네 외국인 노동자들의 반찬을 만들어다 주고, 이웃 과부 아줌마가 혼자 자는 거 무서워한다고 같이 자주고, 지나가듯이 흘린 말을 기억해 옆동네 할머니의 생일선물을 챙겨주는 세상 자상하고 세심한 사람이 우리 엄마다.

그렇게 오지랖이 온 동네를 덮어도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는 마음 때문에 엄마는 자주 상처받았고 그때마다 분풀이와 짜증의 대상은 우리 가족이었다.

남자인 아버지와 남동생은 외면과 침묵으로 불편함을 표현했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감정은 부풀려져서 하나밖에 없는 딸인 나에게로 쏟아졌다.


“소 잡아먹은 귀신이 씌었나 왜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해? 사람 속 터지게!”


아버지의 퇴직 이후 엄마의 말투 때문에 두 분은 자주 다투었고 나는 결혼해 멀리 살면서도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되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했다.

K- 장녀라 그런가,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감정을 살피는데 이골이 나 있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나도 엄마한테 대들기도 하고 더 모진 말로 되받아치기도 하고, 사과를 받기도 하고 흐지부지 화해도 하고 그렇게 살았다.

누워서 침 뱉기라 어디 가서 흉도 못 보고 엄마의 손아랫동생인 이모들과 엄마의 말투를 안주삼아 씹어대면서 속풀이를 하기도 했다.

언젠가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된 큰이모가 엄마의 말투를 지적하며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단다.


“그럼 내가 세상 제일 편한 가족한테나 내 맘대로 하지 어디 가서 맘대로 하니? 남들한테는 막 하면 다신 안 볼 테니 맘대로 못하는 거지, 식구들은 미우나 고우나 안 보고 못 사는 사람들이니까 맘 놓고 편히 하는 거지, 안 그러면 나는 누구한테 맘 편하게 하고 사니?”


이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엄마, 거꾸로야. 안 보면 그만인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안 보고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하는 거야.

결혼해 자식 낳고 살다 보니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 엄마의 사고방식이었다.




지난 주말, 친정에 강아지 두 마리를 맡겼다.

내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친정부모님이 강아지를 돌봐주기로 하셨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문 열어 놓고 사시는 분들이라 혹시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마음의 짐을 어쩌나 싶어 안 맡기려 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루 종일 빈 집을 지키게 하기보다는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 살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부탁을 드렸었다.

게다가 개를 핑계로 나 대신 두 딸과 남편이 한 달에 한 번씩 친정을 들여다보게 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아무래도 엄마는 지금 증세가 거의 나타나지 않을 만큼 호전되었다 해도 우울증 치료 중이니까…


“어쩌겠냐. 딸 가진 죄인이라고 딸이 혼자 외국에 간다는데 개라도 봐줘야지. 동네 사람들이 다 너보고 미쳤대. 다 늙어서 무슨 유학이냐고! 왜 그딴 거는 한다 그래가지고 이 난리냐?”


그렇지, 곱게 봐주실 사람이 아니지…

개를 맡기기 전에도 평소에 안 하던 전화를 매일 하다시피 해서는 그딴 거 때려치우라고 하더니 이젠 개까지 보태졌으니 강도가 더 세졌다.

그리고 큰 딸이 맹장수술을 했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하마터면 애 수술하는 것도 못 볼 뻔했네. 유학은 도대체 왜 간다고 해서 에미 고생시키고 자식 고생시키고 그러냐, 너는?”


엄마, 제발…

그러다 기어이 가슴속에 꾹꾹 눌러놨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남편이 출근도 하기 전 아침 일찍 엄마가 전화를 했다.


“얘, 나 개 못 키우겠어. 여기저기 오줌 싸대고 똥 싸대고… 못 하겠다. 느이 아빠는 냄새난다고 짜증 내고, 내가 머라하면 또 그거 가지고 성질내고, 한 마리라도 도로 데리고 가라.

너는 왜 유학 같은 거는 간다 그래서 이 모냥을 만드니?“


“엄마!!! 그 말 좀 그만하면 안 돼? 이미 다 결정돼서 낼모레 출국하는데 이왕 가는 거 기분 좋게 보내주면 안 돼? 왜 세상 사람 다 응원해 주는데 엄마만 말을 그렇게 못되게 해? 내가 잘되는 게 그렇게 불만이야? 한두 번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래?”


개를 못 키워준다는 게 섭섭한 게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매일 전화해서 울며불며 가지 말라고 했을 때도 속은 상할 망정 화가 나지는 않았었다.

엄마가 말은 저렇게 해도 혼자 남을 사위걱정, 손녀딸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참았었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가지 말라고 잡거나 걱정하는 것과 다르게 엄마의 말투는 점점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너는 왜 그런 걸 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니?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니?


그까짓 게 머라고 왜 하고 싶대니?


같은 말이라도 보고 싶어 어쩌니라던가, 사위가 힘들어서 어쩌니가 아니다.

너 때문에, 도대체 왜, 그까짓 걸…


하루종일 울었다.

딸아이 입원한 병실에서도 울고 집에 빨래하러 들러서도 울었다.

문자로 내일 새벽 개를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말을 뱉어놓고 미안했는지 친정엄마와 아버지가 번갈아 전화를 했지만 안 받았다.

나중에는 남동생을 시켜서 전화를 했다.

남동생은 엄마 말투 저런 거 평생을 겪어놓고 새삼스레 왜 그러냐며 나를 달랬다.

하지만 한번 터진 감정은 수습이 되지 않고 눈물과 함께 하염없이 쏟아졌다.

부재중전화가 열 통이 넘어섰다.


나한테 왜 그래?

내가 지금 나쁜 짓 해?

남들 다 말려도 엄마니까 나 응원해줘야 하는 거 아냐?

남들은 다 응원해 주는데 심지어 시어머니까지 밥 먹여 보내야 된다 밥 사줄게 하는데 왜 엄마만 나를 잡아?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해?

내가 그렇게 만만해?


엄마한테 전화해서 울면서 악을 썼다.

개 때문이 아니라고, 한두 번도 아니고 전화할 때마다 왜 나를 세상 나쁜 년 만들어 놓느냐고, 그렇게 속을 후벼 파야 좋으냐고.


“내가? 내가 너한테 전화해서 가지 말라고 했다고? 나 전혀 기억에 없는데?”


환장하겠다. 정말…

우울증인지 치매인지 저 병은 아주 사람 홀딱 돌아버리게 만드는 병이구나.

지랄 맞은 병 때문에 문제의 본질이 흐려져 버렸다.

나는 가까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엄마의 못된 말투가 문제였는데 엄마에게는 자기가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해서 내가 열받았다는 걸로 변질되어 버렸다.

아무튼 개 문제는 딸아이 퇴원과 나의 출국 이후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대충 봉합되었다.

나는 엄마와 아버지에게 모진 말로 상처만 준 셈이다.


어쩜 저렇게 안 변할까, 온 식구가 제발 말 좀 이쁘게 하라고 평생을 바라는데 어쩜 저렇게 안 바뀔까.

남편에게 울 엄마한테 말로 받은 상처를 말하며 또 울었다.


“낼모레 팔십인 양반을 무슨 수로 바꾸냐? 울 아부지도 죽을 때까지 안 바뀌고 그렇게 살다 가셨어.“


하… 그러네…

그런데 여보, 그 말은 위로가 아니잖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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