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7
2년 전 큰 애가 독립을 하면서 집을 줄여 이사를 했다.
그때 16년간 살던 집을 정리하면서 짐을 엄청나게 줄였었다.
신혼살림으로 장만했던 퀸사이즈 침대도 버리고 소파도 버리고 붙박이로 붙어있던 가구들도 버리고 큰 애가 쓰던 책상과 책장도 버렸다.
살면서 중간중간 이사를 해야 묵은 짐이 정리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이사를 앞두고 정리를 하는데 16년 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면 몇 번을 들락날락하며 짐을 옮겨야 했고 폐기물 스티커도 엄청 사서 붙여서 버렸다.
대용량 쓰레기봉투도 몇 개를 썼는지 모른다.
쓸만한 것은 당근에 팔거나 이웃에 나눔 했다.
포장이사하는 날 대부분의 집들은 짐칸이 부족해서 작은 트럭을 추가로 부르곤 한다는데 우리 집은 자리가 남는다고 폐기물 스티커 붙은 것들도 일단 싣고 올 정도로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집을 줄여와서 그런가 그래도 집은 온갖 물건으로 그득했다.
그리고 2년 뒤, 막둥이가 언니에게로 독립해 나가면서 또 한 번의 짐정리를 했다.
아이가 공부하던 교과서 참고서 학습지 문제집들을 버렸다.
아이 진학에 도움이 될까 해서 버리지 못하고 모아놨던 책들도 버렸다.
그 참에 내가 모아놨던 책들도 정리했다.
한 때는 만권의 책을 모아 큰 방 하나를 가득 채우리라 욕심을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책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사람처럼 늙는다.
언어가 살아있고 사회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것을 담은 책도 역시 살아있다. 그래서인지 발행된 지 오래된 책들은 다시 읽으면 그 감흥이 살지 않았다.
내 경우엔 그랬다. 보기에만 뿌듯할 뿐 깨닫고 보니 그저 먼지 쌓인 짐이었다.
도서관에서 새로 나온 책, 재발행된 책을 빌려 읽는 게 더 기분이 산뜻했다.
그래서 지난번 이사할 때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책들을 이번에 싹 정리했다.
오래된 책들은 버리고 발행된 지 몇 년 안 된 책들은 내가 사서자원봉사를 하는 도서관에 기증했다.
(참고로 도서관에 책을 기증할 때는 선별기준이 있다. 도서관별로 정해진 그 기준에 맞게 기증해야 한다.
나에게 필요 없다고 오래된 책, 보존가치가 없는 책 등을 마구잡이로 기증하면 도서관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막둥이가 떠난 방을 내 방으로 바꿨다.
내가 쓰던 문간방은 드레스룸이자 창고방으로 쓰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20년째 각방을 쓰고 있다. 물론 우리는 사이가 좋다. 아마 각방을 쓰기 때문일 거라고 확신한다.)
남편은 큰 아이가 쓰던 침대를 쓰고, 나는 막둥이가 쓰던 침대를 쓰고 있다.
거실엔 소파대신 식탁을 두었고 두 아이가 공부할 때 쓰던 시스템의자를 식탁의자 대신 의자 겸 개인 소파처럼 쓴다.
그럼 식탁의자는? 원래 벤치스타일이었던 식탁의자는 TV받침대로 용도변경되었다.
거실에 있던 장식장을 버리고 책을 채웠던 책꽂이를 옆으로 뉘어 수납장으로 활용했다.
이리저리 각을 맞추고 길이를 재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꼭 이래 살아야 되나? 그냥 싹 다 버리고 멀끔한 거 돈 주고 사자!“
“나이 오십에 구질구질하게 머 하는 짓이고?”
어떤 날은 내가 버럭했고, 어떤 날은 남편이 우울해했다.
그때마다 서로 ’일 년만 참자‘며 위로했다.
나 일본 다녀오면 그때 새로 싹 갈아버리자.
아예 가전 가구 풀옵션인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 가자.
넷이 살다 둘이 사는데 큰 집이 머가 필요하나, 딱 우리 둘이 살기 좋은 사이즈 집에 꼭 필요한 것만 놓고 살자.
그렇게 서로 달래가면서 정리했다.
그렇지만… 낡은 집에 이 방 저 방에서 쓰던 낡은 가구들로 끼워 맞춘 집은 구색이 하나도 안 맞는 누더기집 같다.
좋은 점은 딱 하나, 내 레고시리즈를 한 곳에 모아서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그거 하나뿐이다.
아직도 버릴게 남아있다.
일단 각자 쓰고 있는 침대를 없애고 제대로 된 침대를 들일 것이고, 버튼이 망가져서 나 아니면 작동을 못 시키는 식기세척기를 버릴 것이다.
식기세척기를 버리는 김에 그릇들을 한바탕 정리해야겠다.
짐을 쌀 때 옷장을 싹 뒤집어 안 입을 옷들을 처분해야겠다.
둘이 시작해서 넷이 되었다가 다시 둘이 된 지금, 줄어든 식구만큼 많은 짐을 덜어내고 비웠다.
앞으로 혼자가 되면 각자 더 버리고 더 비우자.
그리고 다시 둘이 될 때 가벼워진 상태 그대로 만나자.
쓸데없는 것들로 무거워하지 말고 우리 둘이 가뿐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