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6
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접수를 끝냈다.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나는 국내에서 유학 관련 절차를 대행해 주는 유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언어가 유창하기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긴 했지만 어학원 선택과 비자며 숙소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함도 유학원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학원을 통해 삿포로랭귀지센터에 입학원서를 접수하고 인터뷰 한 뒤 입학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비자발급서류만 준비하면 된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본인과 보증인의 서류가 필요하다.
본인 서류로는 최종학교졸업증명서 또는 재학(휴학)증명서, 재직(경력)증명서,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여권복사본, 출입국사실증명서, 사진이 필요하다.
보증인의 경우 재정보증이 가능해야 하므로 재직증명서 또는 사업자등록증명서, 4천만 원 정도의 잔액을 증명할 수 있는 은행잔액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증명서 또는 소득금액증명서가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 부모님이 아닌 남편을 재정보증인으로 세웠지만 은행잔고증명서는 내 명의의 통장 잔고를 보여줬다.
대부분의 가정은 와이프가 소득을 관리하지 않나?
그리고 원래부터 남편과는 유학은 보내주되 학비는 스스로 조달하라는 조건이 있었어서 나름 꽤 치밀하게 저축을 해왔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내 돈으로 잔액증명을 했다.
물론 주머닛돈이 쌈짓돈이고 내 저축액은 모두 남편을 삥 뜯은 결과기는 하지만.
요새는 워낙에 디지털화가 잘 되어 있어서 행정복지센터(내게는 동사무소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에 가면 대부분의 서류들은 다 발급받을 수 있다.
학교졸업증명서 또한 원격팩스발급으로 가능하고 복사도 무료로 해준다.
사진도 새로 찍고, 은행도 다녀오고, 남편 닦달해서 보증인서류까지 모두 준비해서 보냈다.
나와 어학원 사이에서 두어 번의 서류에 관한 소소한 확인들을 거친 후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비자 발급만 기다리면 된다. 비자는 5월 중순경 나올 예정이고 그렇다면 6월 하순 경에는 출국해야만 한다.
생각보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
미리미리 내가 없을 집안을 단도리해 놓아야 한다.
일단 혼자 남을 남편의 생활을 위해 집안일을 전수해야 했다.
결혼 23년 차 부부지만 철저하게 분업을 해온 우리는 각자의 영역을 절대 침범(?) 하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된 나는 가사와 육아를 남편에게 시키지 않았고 덕분에 남편은 밖에서 돈 벌어오는 일 외에는 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자기의 마지막 자존심을 팽개치는 행위라 했고,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라고 시켰더니 고스란히 도로 들고 들어와서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사람이었다.
앓느니 죽는다고 시키느니 내가 알아서 하는 게 빠르고 깔끔했다
무거운 것을 들어주거나 내가 며칠간 집을 비우게 될 때 자기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정도만 겨우 했다.
전구 갈고 막힌 세면대 변기 뚫고 망가진 경첩 갈아 끼우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게 해 줬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걸 진짜 잘해서 두 딸을 키우면서 독박육아, 독박살림을 하는 것에 불만은 없다.
각자 잘하는 걸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이런 남편에게 20년 넘게 해 본 적 없는 살림을 가르쳐야 했다.
“세탁기 돌리는 거 가르쳐 줄게 와서 봐.”
“나중에… 아직 멀었잖아.”
“배울 게 한두 가지야? 쓸 줄 아는 건 텔레비전 리모컨 밖에 모르는데 빨리 배워서 연습해야지!”
“하, 참. 진짜 어지간히 빨리 혼자 살고 싶은가 보다. 나중에 한다고, 나중에! 가기 전에만 배우면 될 거 아냐? 모르겠음 전화해서 물어볼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나도 그리 보채지는 않았다.
쉰이 넘은 아저씨가 사지 멀쩡하고 돈 있는데 못 할게 뭐 있겠나.
밥이야 해 먹을 줄 모르면 사 먹고 다니거나 배달앱 할 줄 아니까 배달시켜서라도 먹겠지.
세탁기 돌릴 줄 모르면 세탁소에 가져가겠지.
집이 더러우면 빗자루로 쓸고 걸레질 정도야 안 배워도 알겠지 싶었다.
“엄마, 꼭 가야 해? 아빠는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거 같은데… 맨날 우리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우리 내려오라 하고 그러는 거 아냐?”
두 딸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며 나의 유학을 다시 생각해 보라 할 정도로 남편은 살림을 배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 인마! 내가 국제전화 요금이 수십만 원 나와도 니 엄마한테 전화하지 니들 귀찮게 안 할 거다! 불효막심한 녀석들!”
두 딸이 깔깔 웃었다.
“아빠는 엄마가 가는 게 싫은 가봐.”
그런 것 같다.
막상 가라 해놓고 진짜 혼자 살려니 막막한가 보다.
그래도 나는 간다. 나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