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지옥과 천국을 넘나들다

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5

by 히토리

막둥이의 입시가 끝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시 몽땅 탈락, 정시 몽땅 합격이다.

수시에는 네 개의 원서를 썼으나 단 한 개도 합격하지 못했고, 정시에는 세 개의 원서를 쓰고 모두 합격했다.

이렇게 극단적일 수가. 중간이 없다. 대~충 뭉뚱그려 수시에 한 개 정도 합격하고 일찍 끝냈으면 좋으련만…


수시 탈락 후 오히려 무덤덤하게 정시를 준비하는 아이와 달리 엄마인 나는 꽤 아팠다.

스트레스로 인한 이석증, 그에 동반된 어지럼증과 구역질, 편두통과 불면증…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데,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싶은데 엄마가 되어서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 골골거리니 미안해 죽을 뻔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를 관리해야만 한다는데 이 스트레스가 관리가 되면 스트레스겠나, 관리가 안되니 스트레스인거지.




정시를 준비하는 동안 나의 일본유학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잊어야만 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대학 합격이 아니라 엄마의 개인적인 욕심에 의한 바람일 듯싶어 유학을 꿈꾸던 지난날이 오히려 죄스러울 정도였다.

나 때문에, 내 욕심 때문에 아이의 앞길을 막았을까…

겸손하라고, 니 까짓게 무슨 나이 먹고 유학이냐고, 그거 깨우쳐 주려고 아이가 재수를 하게 되는 걸까…

니가 대학에 가야 내가 유학을 갈 수 있다고 말한 게 아이에게 부담이 되었을 텐데…

나 유학 안 가도 좋으니까 아이가 정시에 붙을 수 있었으면…

수시 탈락 후에는 일본 유학 준비는 모두 중단하고 정시를 준비해야만 했다.

아이는 수시 결과 발표 전에 계획했던 대로 운전면허도 따고 헬스장도 다니면서 정시 원서 준비를 했다.

수시건 정시건 사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엄마는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밥 해주고, 아이 눈치 보고… 시간은 더디고 마음은 뒤숭숭하다.

이 지루하고 속 시끄러운 시간에 어떤 엄마는 10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췄단다. 어떤 엄마는 뜨개질을 했단다.

나는 수를 놓고 그림을 그렸다.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 밖에 없었다. 일본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럴 기분도 아니었고…



그렇게 두 달여의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막둥이는 대학에 합격했다.

마음 고생한 시간만큼 기쁨의 감격도 컸다.

몸뚱이는 다 곯은 것 같은데 아이 얼굴을 보면 웃음이 새어 나오고 몸에 짜릿한 전율이 왔다.

입학까지의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준비할 일도 많았다.

나만치나, 아니 나보다 더 속을 끓였을 막둥이 데리고 여행도 한 번 다녀오고, 노트북이며 아이패드며 이것저것 구비도 해 주고, 서울로 실어 갈 이삿짐도 싸고…


그 와중에 나도 방송대를 졸업했다. 4년 만에 쉼 없이.

4년 8학기 평균 학점 4.1로 학업우수상도 받았다.

그런데 달랑 상장만 주네, 문화상품권이라도 한 장 주지. 4년 동안 정말 꾸역꾸역 공부하느라 애썼구만.

내 머릿속의 지우개 때문에 외우다 외우다 짜증 나서 책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본다고 이 짓거리냐고 혼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이번 시험 쿨하게 포기한다고 해놓고 불안한 마음에 벼락치기로 밤샘 공부도 해봤다.

나름 치열했다면 치열했던 4년의 과정이 졸업장과 상장, 두 개로 요약되는군.




유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7월 학기 입학 서류 접수를 시작하는데 준비하겠느냐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이 다 빠져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던 몸뚱이에 갑자기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나 유학 갈 수 있는 거구나!

그동안 스스로를 다그쳐가며 채찍질한 이유가 이거였는데 남편이 제시했던 일본어학연수라는 달콤한 당근을 잊어버릴 수는 없지.

내 나이 딱 오십. 백세인생의 전반기는 두 딸이 성인이 됨과 동시에 방송대 졸업으로 마무리지었다.

후반기는 일본유학으로 시작하자.

서류 준비 스타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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