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4
“엄마, 인스타툰을 그려보는 건 어때? “
심심해서 그려놓은 낙서들을 보고 큰애가 말했다.
고3이 되면서 막둥이는 매일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에 왔다.
아이가 올 시간 즈음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겸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간다.
집에 들어오면 자정은 훌쩍 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새벽 한 두 시는 기본이다.
아이를 기다리는 그 시간까지 안 자고 기다리는 게 너무 심심하고 지루해서 온라인 취미 클래스를 구독해 이것저것 끄적이는 중이었다.
그중 하나가 연필드로잉이었는데 연습한 걸 보더니 남편과 딸들이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라며 부추겼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짧은 만화를 그려 인스타에 올려보란다.
그러고 보니 온라인 취미강좌에도 그런 커리큘럼들이 꽤 많았다.
해 봐?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긴 했지만 이번엔 좀 망설여졌다.
나는 지금 이미 고3 딸의 뒷바라지로 꽤 바빴고 - 엄마가 할 일은 없다지만 마음의 여유는 없다 - 유학을 가기 위해 그 길을 뚫으려 애쓰는 중인데 그것까지 할 수 있을까?
어렸을 적부터 그림 끄적이는 거 좋아하긴 했지만 그걸 본격적으로 해 본 적은 없는데…
좋아하는 일이 잘해야 하는 일이 되면 좋아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좋아서 하는 이 일이 숙제처럼 되어버리면 어쩌나…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강제성이 있어야 하지만 나는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막둥이가 대학을 가고 내가 유학길에 오르면 유학생활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그림일기 형식으로 남겨보기로 마음먹었다.
할 일 많고 머리 복잡한 지금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으로 삼고 꾸준히 많이 많이 그리다가 나중에 꼭 기록해 보련다.
매일매일 한두 장씩 종이에 연필, 펜, 색연필 등등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포즈를 그린다.
내 미래의 추억을 함께 해 줄 친구들을 그리기 위해서.
건물이 있는 풍경도 그린다.
내가 미래에 들러 먹고 마시고 즐길 그곳들을 그리기 위해.
어학공부도 시간을 정해놓고 하고 있다.
다행히 딸내미 뒷바라지 하려고 방송대 마지막 학기에는 학점을 적게 신청해서 공부가 그리 쪼이지는 않는다.
“내가 보기엔 그것도 병이야. 가만히 누워서 쉬어야 쉬는 거지, 만날 멀 그렇게 꼼지락거려 쌌냐. 그래놓고 허구한 날 피곤하네 삭신이 쑤시네 그러지. 가만히 좀 있어 봐봐. 그래야 충전이 되는겨. “
“나 지금 쉬는 거야. 방해하지 마. “
남편의 쉬는 방식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멍하니 TV를 보거나 잠을 잔다.
나는 쉬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나의 쉼 거리가 늘었다.
그림일기 그릴 준비하기.
내 그림일기의 첫 소재는 무엇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