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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ul 14. 2024

긴장이 풀렸나 보다

쉰 살의 유학일기 - 다시 여름 #7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

지난주 일요일에 JLPT시험을 보고 나서 긴장이 풀린 것인지, 본격적인 이사준비를 하느라 피곤했던 것인지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칼칼하니 따끔따끔했다.

감기인가… 그럴 수도 있다.

요새 삿포로는 낮 최고기온은 26~7도 정도에 햇빛이 꽤 따갑지만 밤에는 15도 내외로 기온이 뚝 떨어져서 쌀쌀하다.

창문을 닫고 자는데도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야 할 정도다.

집에서 짐정리를 하는데 마사미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남편이 출장 갔는데 같이 온천 갔다가 저녁 먹겠느냐고. 번개모임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언니는 내가 삿포로에 있는 동안 시간 날 때마다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려고 무척 애쓰고 있다.

감사하게도 이 날도 온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포도밭과 양조장에도 들르며 두루두루 드라이브를 했다.

八剣山(핫켄잔)와이너리. 뒷산의 암벽이 8개의 칼날을 닮았단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이 점점 칼칼해졌지만 온천에 푹 담그고 맛있는 거 먹고 집에 가서 쉬면 낫겠지 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미리 약국에 들러 종합감기약도 사서 먹고 푹 잤다.

다음날 목요일은 목소리가 좀 쉬고 기침이 콩콩 나오긴 했지만 컨디션은 좋았다.

순돌엄마가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며 챙겨준 음식들로 기력보충하며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했다.

육개장 사발면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금요일엔 원래 마사미언니와 羊ヶ丘(히츠지가오카)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다.

하츠지가오카에는 옛날 나 중학교 때 4줄짜리 영어공책 겉면에 쓰여있던,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한 홋카이도 개척의 아버지 클라크 박사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면 꿈이 이루어진다나… 오타니 쇼헤이도 유명해지기 전에 여기서 사진을 찍었단다.

삿포로 돔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넓은 초원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라벤더 밭에서는 무료로 1인당 50줄기씩 잘라갈 수 있도록 가위를 빌려주어 작은 꽃다발도 만들었다.

공원 안의 식당에서 ‘여기서 키우는 양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징기스칸 요리를 먹었다.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길에 또 다른 라벤더를 보러 갔다. 홋카이도의 여름은 라벤더의 계절이니까.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두대불전이 있는 타키노레이엔의 라벤더는 아직 만개는 아니었다.

추모공원이지만 고즈넉함이 좋아 자주 왔는데 계절마다 느껴지는 분위기다 모두 다르다.

1년간 무탈하게 지내다 간다고 감사인사도 했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던가. 어디가 원조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에도 ‘デザートは別腹’(데자토와 베츠바라)라고 똑같은 말이 있다.

양계장이 딸린 카페에서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고 집에 왔다.


그리고 나는 인어공주처럼 목소리를 잃었다…

언니랑 종일 떠들어대서인지 저녁 무렵부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몇 년 전 죽도록 앓은 코로나와 증상이 똑같다.

기침할 때마다 목구멍에 찢어지게 아프고 오한, 발열, 근육통에 식은땀까지…

약을 사다 먹긴 하는데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

어제 토요일 하루종일 앓고 오늘은 좀 낫다.

그간 시험 본다고 바짝 긴장했던 것도 풀리고, 이제 집에 돌아간다니 혼자 살면서 다잡았던 마음이 풀어진 것인지 꽤 앓았다.

혼자 있다 보니 먹는 것도 부실하고 살림살이를 처분해 잠자리도 불편하고 해서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순돌엄마가 챙겨준 한식 덕분에 비실대며 벤토사러 나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일본에 오고 딱 일주일 만에 세균성급성장염으로 호되게 아팠는데 돌아가기 딱 일주일 전에 또 아프다.

수미상관이네, 맘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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