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여름편 #2
삿포로에 도착한 지 딱 일주일 만에 막둥이가 왔다.
방학을 했는데 아무리 일정을 짜봐도 엄마를 보러 올 시간이 이때 밖에 없단다.
아이가 오기 전, 사람 사는 집 꼴이라도 갖춰야겠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빈 집을 채웠다.
렌털한 가전 4종(냉장고, 세탁기, TV, 전자레인지)과 니토리(일본의 이케아)에서 구입한 싱글 침대와 침구, 집 근처 중고가구점에서 구입한 작은 소파와 서랍장과 테이블, 드럭스토어에서 산 샴푸 린스 등등…
일주일 내내 구글지도와 두 다리로 열심히 돌아다녀서 어지간한 살림살이를 갖추었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계약한 집이었지만 나름 삿포로 중심가에서 가까운 주택가라 그런지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주변에 있을 건 다 있다.
마트, 편의점, 은행, 우체국, 드럭스토어, 다이소…
그리고 와서 보니 제일 좋은 점은 집 근처에 지하철이 아닌 트램이 다닌다는 거다.
집을 구하면서 구글지도에서 봤을 적에는 사실 지하철인 줄 알았다.
이 노면전차 트램은 삿포로와 그 주변에서는 시덴(市電)이라고 부른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삿포로의 서남쪽을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뱅뱅 돌며 순환운행한다.
막둥이는 이 시덴이 이국적이라고 꽤 좋아했다.
이걸 타면 중심가인 스스키노까지 한 번에 가서 여행할 때나 쇼핑할 때 아주 잘 타고 다녔다.
아직 학기가 시작되지 않았고 막둥이도 온 김에 같이 후라노와 오타루에 가기로 했다.
후라노&비에이 지역은 일일투어를 신청해서 다녀왔다.
후라노는 마침 라벤더가 이쁘게 피어있었고 비에이에는 아직 꽃이 덜 피어 조금 아쉬웠다.
청의 호수와 흰수염폭포는 작지만 참 아름다웠다.
오타루는 삿포로역에서 JR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치즈케이크 가게 르타오의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무지개를 보는 행운도 얻었다.
삿포로 시내에서는 아이스크림, 수프카레, 징기스칸, 스시 등등 온갖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유명한 집을 뒤지고 찾아서 먹였건만 막둥이는 옥수수 삶은 게 제일 맛났단다. 지금 제철이라 그런지 옥수수가 정말 맛있다.
4박 5일 동안 짧고 굵게 돌아다니고 막둥이는 오늘 서울로 돌아갔다.
나의 학교 일정 때문에 공항까지 데려다주지도 못하고 삿포로 역에서 헤어졌다.
혼자서 삿포로까지 잘 온 것처럼 막둥이는 혼자서 씩씩하게 서울로 잘 돌아갔다.
우리 집 상꼴통이던 막둥이가 이제 진짜 어디에 내놓아도 걱정 없을 어른으로 고맙게 잘 자라줬다.
학교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좀 울었다.
떨어진 머리카락, 먹다 남은 옥수수, 어제 이별주라며 같이 마신 호로요이 캔 등을 치우는데 감정이 막 북받쳐 올랐다.
막둥이 오기 전에는 왔다 갔다 하면서 살림 채우느라 정신없었고, 막둥이가 와서는 하루 2만 보가 넘게 걸으면서 빡센 여행을 하느라 외로울 틈이 없었는데 막둥이가 가버리고 나니 정말 혼자라는 기분이 든다.
너무 조용한 집이 싫어 TV를 틀어놨는데 나오는 일본말에 더 서러워졌다.
일요일까지 있다 가라고 할걸 그랬나…
주말엔 더 외롭겠다.
이러다 나 중간에 외로워서 못 살겠다고 그만두는 거 아닐까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