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나라에서 살기 시작하다 2

쉰 살의 유학일기 - 여름편 #3

by 히토리

일본에 입국하면 2주 이내에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

학기 시작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혼자서 처리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머릿속으로 얼마나 시뮬레이션을 했는지 모른다.

버스노선, 지하철노선, 트램노선도 외우고, 걸어가는 길도 짚어보고, 전입신고 하는 법을 자세히 적어놓은 글들도 얼마나 많이 찾아봤는지…

일처리가 늦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정보를 보고 구약소(구청) 업무 시작 시간인 8시 45분에 맞춰서 갔다.

아싸, 1번이다!!

업무가 시작하기 전, 서류에 정보를 써넣었다. 나이 지긋하신 안내 도우미 분께서 이것저것 도와주셨다.


연호를 쓰는 나라, 일본. 올해는 令和(레이와) 5년이란다.


올해는 令和(레이와) 5년이며 내가 태어난 시기는 昭和(쇼와) 47년이란다.

나는 그래도 외국인이라고 생년월일을 서기로 적어도 되더라.

주소까지 일일이 한자로 다 썼다.

나는 그래도 한자문화권에 살았고, 중고등학교 시절 한자 교육을 받았고, 일본어 공부를 몇 년 해서 그나마 한자 쓰는데 큰 무리는 없었는데 한자문화권이 아닌 외국인들은 좀 어렵겠다 싶었다.

내 뒤에 온 동남아 쪽 외국인들은 안내 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본인이 직접 써야 한다고.

서류를 다 쓰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민원창구 앞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는데 시간이 되니 종이 울리고 일제히 블라인드가 올라갔다.

종소리가 나 학교 다닐 때 수업 끝날 때 나는 종소리랑 똑같았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하더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는 데다가 내가 써넣은 주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옛날 전화번호부만 한 두꺼운 지도책을 이용해서 확인까지 했다.

나는 주소를 구글맵을 보고 적었는데 번지수 쓰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며 새 종이를 주더니 다시 쓰란다.

그리고 여기저기 사인하라 하고, 서류의 내용들을 컴퓨터에 다시 입력하고, 내 여권과 재류카드를 복사하고…

그래도 쉬운 일본어로 천천히 말해줘서 어렵지 않게 전입신고를 마쳤다.

재류카드 뒷면에 주소를 인쇄하는 동안 2층에 가서 건강보험을 가입하고 오란다.

건강보험도 수월하게 가입했다.

소득이 없는 학생이라 최저요금이 나올 것이고, 일주일 이내에 납부 고지서가 집으로 갈 테니 납부하라고 했다.

다시 1층 민원실에서 15분 정도 더 기다려 뒷면에 주소가 인쇄된 재류카드를 돌려받았다.

모두 45분 정도 걸렸다. 1등으로 가서 기다리지 않아 가능한 시간이었겠지.

이날 국민연금 가입과 면제신청까지 했어야 했는데 학교에서 안내를 안 해주는 바람에 다음날 또 가서 마저 처리했다.


내 기억엔… 2년 전 서울로 이사할 때 전입신고는 남편이 했던 것 같다.

거진 컴맹 수준인 남편이 온라인으로 전입신고를 했고 그와 동시에 우편물 주소이전까지 한꺼번에 처리했다고 들었다.

원스톱으로 모두 처리했다고 집에 와서 의기양양해하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국민연금 가입과 면제 신청을 하러 갔을 때 업무 시작 전 민원창구 모습. 시간이 되면 종이 울리고 저 블라인드를 올린다. 한 20년전 우리나라 은행같은 느낌이다.





전입신고를 하고 2~3일 뒤, 우편함에 이런 것이 와 있었다.

내용을 보니 이것은 당신이 여기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니 살고 있으면 1번을 체크해서 가까운 우체통에 넣어달라, 정해준 날짜까지 이 엽서가 우체국에 도착하지 않으면 우편물이 반송된다는 내용이다.

아마 내가 없을 때 우체부가 다녀갔었는 모양이다.

전입신고를 했으면 살고 있다는 걸 텐데 굳이?

아무튼 시키는 대로 1번에 동그라미 쳐서 편의점 앞 우체통에 넣었다.


당신이 이 주소에 살고 있으면 1번에 동그라미 하시오~~


내가 외국인이라서 불편한 거겠지?

한국에서라면 전혀 필요 없었던 일들은 아마 내가 한국인으로 모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살면 도대체 이런 일이 왜 필요할까 싶은 일도 분명히 있겠지.

라이프스타일의 디지털화와는 조금 다른 문제인 듯싶다.


구약소일을 마치고 근처의 다이소에 들러 살림살이를 샀다.

커다란 다이소 비닐봉다리를 들고 노면전차를 타러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일본인이 내게 길을 물었다.


“私は外国人からわかりません。(저는 외국인이라서 몰라요.)“

“あっ、ごめんなさい。(앗, 미안합니다.)”


여기 지금 일본인 관광객이 무지하게 많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일본인들이 많다더니 모두 선선한 홋카이도로 왔는가 보다.

그래도 내 눈에는 한중일 모두 확실하게 구분이 가던데 아무리 내가 편하게 입고 다이소 봉다리를 들고 있다고 현지인처럼 보였을까.

집에 와서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말만 안 걸면 구분 못할 패션이긴 했다.

이제 일본 전화번호도 있고 살고 있는 집주소도 있으니 현지인이지 뭐. 맞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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