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여름편 #4
일본어를 배울 때 과외 선생님이 주부였어서 그런지 가끔 일본 살 때 이야기를 하면 서로 공감하던 부분들이 있다.
먹거리나 육아, 살림팁 등등. 그때 재미나게 들었던 이야기가 쓰레기 배출할 때 고생했던 이야기였는데 그때는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었다.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싱크대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던 책 한 권 두께의 입주민 안내서에서 가장 눈에 띄게 강조되어 있던 것이 쓰레기 배출 안내였다.
심지어 학교에서 생활 안내를 하는데 쓰레기 배출 방법 안내 시간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우리 집은 삿포로시 중앙구. 지역마다 배출일이 달라서 날짜와 요일에 맞춰 제대로 배출해야 한다.
학교에서 안내해 준 대로 ‘札幌市ゴミ分別アプリ(삿포로시쓰레기분리앱)‘을 깔았다. 설정을 한국어로 바꾸고 꼼꼼히 살폈다.
어렵다… 일단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읭? 싶은 내용도 있고, 요일마다 버려야 하는 물건들이 다른데 그걸 일일이 가려내는 게 쉽지 않았다.
결론은 살다 보니 20년 주부 짬밥으로 눈치껏 알아졌지만 처음에는 방바닥에 쓰레기를 늘어놓고 고민을 했다.
잘못 버리면 경고도 받고 벌금도 물어야 한다는데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 때문에 망신당하고 싶진 않았다.
한국에서 우리 아파트는 매주 일요일이 재활용 쓰레기 배출일이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경비원 아저씨가 커다란 자루를 주차장 귀퉁이에 몇 개 펼쳐놓았다.
거기에 일주일 동안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나가 페트병, 깡통, 유리병, 종이, 비닐 등등으로 알아서 나눠 놓으면 되고, 일반 소각용 쓰레기나 음식물 쓰레기는 매일 아무 때나 나가서 버리면 됐었다.
일본에서는 음식물쓰레기는 따로 버리지 않는다. 태울 수 있는 쓰레기로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같이 버려 내놓으면 된다.
종량제 쓰레기봉투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데 내가 쓰는 제일 작은 용량인 5리터짜리 봉투는 열 장 한 묶음에 100엔이다.
나머지는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봉투에 종류별로 모아서 날짜에 맞춰 내놓으면 된다. 단, 아침 8시 30분 이전에!
문제는 한국처럼 아무 때나 버릴 수 있거나, 아니면 쓰레기를 모아둘 장소가 있거나 하면 좋으련만 우리 집은 베란다가 없다.
음식물쓰레기는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꼭 묶어 두었다가 모아버리면 된다지만 플라스틱이나 종이, 캔 등을 따로 모아놓을 장소가 마땅치가 않다.
게다가 택배박스 같은 골판지 - 여기서는 단보루 - 는 종이 배출일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 자원으로써 따로 배출해야 한다는 거다.
이사 오면서 매일 배달된 택배 때문에 박스가 장난 아니게 쌓였는데 이걸 어디에 모아놓고 언제 버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집 쓰레기장이 어딘지 모르겠다.
맨션 주차장 입구 작은 문 달린 건물(?)이 쓰레기장 같은데 번호키로 잠겨 있어서 열 수가 없었다.
안내서를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고, 관리회사에 전화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오며 가며 같은 건물 입주자를 마주치면 물어볼 셈이었는데 이 건물엔 나만 살고 있는지 도저히 만나지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며칠 동안은 오픈된 옆집 쓰레기장에 버렸다. 옆집 쓰레기장은 접이식 그물망 같은데 낮에는 사라졌다가 저녁 무렵 펼쳐지고 다음날 오전엔 다시 접혀서 건물 구석에 낑겨져 있다.
다행히 막내딸이 다니러 왔을 때 딸과 함께 놀다 들어오던 저녁, 입주민 하나를 만나서 쓰레기장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이제 도둑쓰레기 배출 안 해도 된다! 쓰레기 몰래 버릴 때마다 혹시나 누가 왜 남의 쓰레기장에 버리냐고 물어볼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쓰레기를 들고나갔다가 사람 지나가면 슬그머니 도로 들고 들어온 적도 있다. ㅜㅜ
택배박스도 옷장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다 보니 해결이 됐다.
어느 날 우편함에 찌라시 하나가 들어있었는데 골판지나 헌신문지, 잡지 같은 폐지 수거 안내문이었다.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이다.
집에 쓰레기를 모아놓은 문제도 살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별 무리 없이 지내고 있다.
붙박이 옷장 저 안 쪽에 택배박스를 착착 접어 모으고 싱크대 배수구 아래에 커다란 마트 비닐봉지를 놓아 쓰레기별로 나누어 모아놓는다.
집 안에 쓰레기들을 모아놓으려니 냄새가 나지 않게 일단 잘 씻고 헹구어야 한다.
종량제 봉투는 다 차지 않아도 일단 날짜가 되면 내놓는다. 음식물쓰레기를 함께 버리니 오래 내버려 둘 수가 없다.
혼자 살다 보니 쓰레기가 많지는 않지만 집이 좁아 둘 곳이 없어 생기는 족족 처리해야만 한다.
그러고 보니 버려진 일본의 종량제 쓰레기봉투들은 대부분 헐렁했다.
한국에서는 빵빵하게 꽉 채워 버리지 않으면 은근 손해 보는 느낌이었는데…
한국과 일본의 시스템 중 어떤 것이 좋은지에 대한 비교는 무의미하다.
다들 각자에 맞는 생활방식에 따라 약속을 정하고 살면 되니까.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고 불편함은 개선해 나가면 되니까.
중요한 것은 새로운 규칙이나 생활에 잘 적응하려는 말랑말랑한 나의 유연한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