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맞는 광복절

by 히토리

2023년 8월 15일 화요일


내가 이 글을 쓰려고 그동안 밀린 편의점 일기를 몰아서 다 썼다!!

(글이 거칠 수 있음 주의)


오늘은 광복절이다.

일본은 종전기념일이네 오봉야스미네 어쩌구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아침에 어떤 할배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피-스’ 하고 말을 툭 던진다.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한 번 더 ‘피-스! 타바코(담배)’라며 버럭 한다.


오~~ 나도 이제 진상을 만나는구나!

그런데, 영감탱이야, 날을 잘 못 골랐다.

오늘은 광복절이란 말이다!!

내가 아무리 한일전 축구경기도 관심 없어하는 애국심 바닥인 인간이래도 일본 한복판에서 맞이하는 광복절에 당신같은 진상을 마음 좋게 대할 수 있겠냐??!!

답답한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올시다~~


“번호로 말해주시겠어요?”


“피-스! 저거!”


이 양반, 갸루상인가~

아, 몰라! 나 외국인이야. 내가 아무리 알바래도 오늘 같은 날 당신 같은 니뽄 진상한테 스미마셍은 못 하겠어.

일부러 더 무표정하게 멀뚱히 보고 있으니까 한껏 성질난 목소리로 번호를 말해준다.

이미 손가락질로 가리켰을 때 찾았지만 일부러 약 올릴 겸 이거? 이거? 하며 엄한 걸 짚었다.

얘는 귀엽기라도 하지… 쯧…


서너 번 만에 원하는 담배를 찾은 할배는 천 엔짜리 지폐를 테이블에 탁 놓았다.

그런데 어쩌나~ 이 편의점은 알바가 돈을 안 받고 댁이 직접 기계에 넣어야 하는 걸~


“보탕오 오시떼 쿠다사이(버튼을 눌러주세요)”


씩씩대며 혼자서 지폐내고 좌라락 쏟아지는 거스름 동전까지 챙긴 영감은 홱 돌아서서 나갔다.

소심하게 복수한 듯하지만 솔직히 기분은 안 좋다.


집에 와서 태풍 정보를 보느라 TV를 켜고 버릇처럼 아이패드로 한국 뉴스를 틀었다.

공교롭게 일본 TV에서는 종전기념식이, 아이패드 뉴스에서는 광복절 기념행사를 한다.

진정한 복수는 용서하는 거라 했던가.

나는 소인배라 그러고 싶진 않고 부디 우리가 너희보다 잘 살길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신문팔이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