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0일 일요일
광복절 무렵 태풍이 일본열도를 훑고 지나간 후 삿포로의 더위는 기세가 한풀 꺾였다.
낮에는 아직도 뜨겁지만 밤에는 제법 선선하다.
오늘 아침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내가 삿포로에 오십여 일 살면서 본 제일 세찬 비였다.
“비 오는 주말엔 손님이 별로 없어요.“
같이 일하던 점장의 아내 분이 말했다.
나 같아도 쉬는 날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집 밖에 나가기 싫지. 당연히.
매일 신문을 사러 오는 할아버지 손님들은 비가 쏟아져도 오셨다.
내게 ‘상큐’라고 말해주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단정한 차림으로 오셨고, 또 다른 할아버지는 잠시 비가 그쳤을 때 왔다가 고새 다시 퍼붓는 비 때문에 십분 정도 가게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옷 속에 신문을 넣고 종종걸음으로 돌아가셨다.
한가한 편의점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평일에 일본의 직장인 특유의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깔끔하게 입는 남자분인데 헤어스타일이 파격적이어서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헤어스타일은 일본의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초사이언처럼 생겼다. 다만 노랑머리가 아닌 새카만 머리지만.
진짜로 숱 많은 장발의 머리를 구획에 딱 맞춰 나눠서 어찌나 멋스럽게 스타일링했는지 헤어제품 뭐 쓰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만화주인공 같은 헤어스타일과는 상반된 흰 셔츠와 검은 바지, 단정한 모나미룩, 그리고 누가 봐도 일본인스러운 얼굴.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너무 잘 어울리는 내가 기억하는 평일의 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일요일의 그의 모습은…
모나미룩 대신 군복색깔 목 늘어난 면티에 헐렁한 반바지, 쪼리 쓰레빠…
헤어스타일은 폭탄이다.
예전 구리구리 양동근씨와 비슷하다.
참 인간적이지 않나?
평일에 그를 볼 때마다 몇 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걸까 궁금해하면서 부지런해야 멋쟁이도 되는구나 감탄했었는데 일요일의 그에게서는 진한 사람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일요일엔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남편이 너무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