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가을편 #4
오늘은 결혼 23주년 기념일이다.
우리 부부는 하루하루 재밌게 살자 주의라 기념일이라고 크게 이벤트를 벌이거나 하진 않는 편이다.
생일엔 미역국 끓여 먹고, 결혼기념일엔 외식하는 정도?
나 스스로도 기념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신혼 때 남편의 말이 우습기도 하다.
“결혼기념일인데 머 없어?”
“너만 결혼했냐? 각자 퉁치자.”
“그런가…? 그래!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
각자 퉁치자는 남편의 말에 크게 섭섭해하지도 않고 오케이 한 거 보면 나도 꽤 쿨한 성격인가 보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결혼기념일인데 머 먹으러 갈까?”
“밖에서 먹는 거 맨날 거기서 거긴데 그냥 대충 집에 있는 걸로 먹자. “
“싫어. 나 결혼기념일에도 밥 하기 싫어.”
“나는 결혼기념일날 일하기 싫어도 출근하는데?”
“너도 출근하지 마. 째!”
남편은 출근했고 아마 그날 대충 삼겹살 같은 거 먹었지 싶다.
나는 결혼기념일을 챙김 받지 못하는 걸로 속상한 적은 없다.
다만 늘 그날이 추석 무렵이라 왠지 은근히 억울한 느낌은 좀 있었다.
며느리다 보니 아무래도 이러저러 신경 쓸게 많은 명절이고 연휴라지만 여행을 가기도 그런 애매한 날에 꼭 우리 기념일이 끼어있는 게 불만이었다.
그날로 택일한 우리 부부 탓이지 머…
가뜩이나 별 대접 못 받는 결혼기념일인데 올해는 그마저도 따로 보내고 있다.
하필 일요일이네…
하루종일 뒹굴 거리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무작정 걸으러 나갔다.
한참을 걷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트 빵집에서 주먹만 한 몽블랑 조각 케익을 샀다.
2엔 주고 작은 초도 하나 샀다.
나 혼자라도 기념해야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서 자유로운 1년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으니 남편에겐 감사를, 나에겐 행복을 빌어줘야지.
집에 와서 삿포로 클래식 캔맥주 한 캔을 팍! 따고 케익에 초를 꽂았다.
아뿔싸! 집에 라이터가 없다. 성냥도 없다.
우리 집은 올덴카(オール電化, 주택의 에너지원이 100% 전기인 집)라 가스레인지도 없다.
촛불을 켤 방법이 없네…
남편도 없고 촛불도 없고~
참말로 자유로운(?) 결혼기념일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