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유학일기 - 가을편 #10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남편이 다녀갔다.
20일 전쯤 딸이 다녀간 후라 그런지 지인들이 외로울 틈이 없겠다 했지만 누군가 다녀간 후의 흔적은 생각보다 진해서 후유증이 꽤 크다.
딸이 흩트려놓고 간 마음을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독였다.
“쌀쌀해지는데 온천이나 가자.”
온전한 휴식을 원한다는 남편 요구에 맞춰 여행지를 고르고 료칸을 정하고 예약하고…
결혼 전 데이트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일등!!”
작은 배낭하나 달랑 맨 남편이 공항 입국장에 정말 1등으로 나타났다.
같이 살 때는 여행짐 쌀 때도 손가락하나 까딱 안 하던 사람이 혼자 살기 넉 달만에 혼자 여행의 달인이 된 듯하다.
배낭 안에는 3일 치의 양말과 속옷, 칫솔, 잠옷이 전부…
“마누라 집에 오는데 짐이 머가 필요한데?”
공항에서 바로 노보리베츠로 갔다.
바다가 보이는 온천 호텔에서 푹 쉬었다.
우리가 묵었던 ‘코코로노리조트 우미노벳테이 후루카와 온천호텔’은 호텔들이 모여있는 노보리베츠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호텔 주변에 편의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인지 가이세키 요리로 석식과 조식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하루 종일 두어 시간마다 간식과 음료가 무료로 제공된다. 객실과 온천탕이 모두 바다 쪽을 향해 있고 마당에 족욕장도 있어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휴식하기에는 최고였다.
먹고, 온천하고, 먹고, 낮잠 자고, 먹고, 족욕하고…
나란히 앉아 손잡고 바라보는 바다가, 같이 먹는 음식이, 같이 걷는 산책이… 모든 시간이 좋았다.
내 곁에 남편이 같이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일줄이야.
1박 2일 짧지만 나름 호화로웠던 온천여행 후 버스를 타고 삿포로로 돌아왔다.
남은 2박 3일간 아직도 낯설지만 그나마 익숙한 삿포로에서 여행 같기도 하고 일상 같기도 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러 가고, 나를 위해 한식당을 찾아서 삼겹살을 먹고, 마트에서 물을 사서 쟁여주고, 동네 이자카야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고…
제일 친한 내 친구랑 보내는 시간은 참 빨리도 간다.
남편이 돌아가고 난 후, 텅 빈 집에 들어오기가 얼마나 싫었는지…
아직 비행기에 있을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기분으로는…
당신이 너 도로 와라 하면
좋다고 미련 없이 당장 한국으로 갈 수 있어.
한국에 도착한 후 메시지를 본 남편이 답장을 보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있고 싶음 있고
오고 싶음 오고
맞다. 내가 무슨 결정을 하든 남편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줄 사람이다.
23년을 같이 살았지만 처음 만나 연애할 때처럼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사람이 당신이어서 너무 좋다.
나이 먹어도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당신이 내 남편이라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