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무시,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삿포로 유학일기 - 가을편 #11

by 히토리

하루하루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밤기온도 꽤 내려가 난방을 해야 하나 싶은 날도 있다.

그다지 추위를 타지 않는 체질인 데다가 우리 집은 커다란 창이 남쪽과 서쪽에 나있어 햇볕을 하루종일 받기 때문에 아직 난방을 하지 않아도 춥지 않다.

비가 오는 날이나 아침나절 쌀쌀할 때는 잠깐씩 코타츠를 켜고 있다.

삿포로의 가을은 겉보기엔 참으로 낭만적으로 무르익고 있다.




며칠 전 공원을 가로질러 학교를 가는 아침, 하루살이 같은 날벌레가 눈앞에서 날아다니길래 무의식적으로 손을 휘휘 저어 흩뜨리며 걸어갔다.

마침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마주 오던 할머니가 내 모습을 보더니 말을 건넸다.


“雪虫が多いでしょう?

もうすぐ雪が降るだろうね。

(유키무시가 많지? 이제 곧 눈이 오겠네)”


학교 교실에서도 친구들 옷에 묻어 들어왔는지 날벌레 두어 마리가 날아다녔다.

선생님이 雪虫(유키무시, 눈벌레)라고 알려줬다.

유키무시는 홋카이도에 사는 날벌레로 유키무시가 날아다니면 곧 눈이 오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유키무시가 나타나면 겨울준비를 한다고 한다.

유키무시는 하루살이 보다 조금 크고 이름처럼 눈송이가 붙은 듯 꽁지가 하얗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순돌이네도 겨울용 타이어로 교체했다고 했고, 마트 신발코너에 털이 복슬한 겨울용 방수부츠가 나왔다.

유키무시, 눈의 전령다운 이름이 이쁘기도 하고, 곧 눈이 온다니 설레기도 하다.

집에 오는 길, 공원 개울에서 포롱포롱 날아다니는 유키무시가 보여서 동영상을 찍었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배경 같은 그런 예쁜 풍경이었다.




하지만…

생활한다는 건 생각보다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올여름 고온으로 인해 유키무시가 특이하게 대량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며칠 전 눈앞에 동화처럼 아른거리던 유키무시는 지금은 무시무시하게 많아져서 걷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쟈켓을 뒤집어쓰거나 우산을 방패 삼아 지나가기도 하고 아예 멀리 빙 돌아가기도 했다.

역이나 건물 입구에서 옷이며 머리칼에 달라붙은 벌레를 털어내느라 다들 분주하다.

나는 멋모르고 하얀 플리스 잠바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옷에 새카맣게 달라붙은 유키무시를 보고 경악을 한 후로는 외출할 때 흰옷을 안 입고 있다.

옷뿐만 아니라 눈코입 가릴 것 없이 달려들어서 안 쓰던 마스크도 도로 쓰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며 다니고 있다.

어마무시한 유키무시
사진출처 네이버

유키무시는 눈이 오면 사라진다는데 겨울낭만을 위해 눈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벌레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기다려야 한다니 서글프다.

삿포로에서 작년 겨울을 지내본 적이 있는 학교 친구들은 내가 눈을 기다린다 하면 질겁을 하며 ‘やだやだやだ(싫어 싫어 싫어)’ 하고 진저리를 친다.

어느 정도이길래 저럴까 싶긴 하지만 매일 일기예보를 보며 이제나 저제나 첫눈을 기다리는 내 맘이 오래도록 낭만적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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