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그만두기로 하다

쉰 살의 유학일기 - 가을편 #9

by 히토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려고 생각한 건 한 달 전부터였다.

나는 사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좀 더 다양한 경우에서 일본어를 말할 기회를 가져보고 싶어서 알바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알바를 하는 동안의 말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어서 오세요, 봉투 필요하세요? 감사합니다…

처음에 일을 배울 때는 누군가가 옆에 딱 붙어서 이러저러한 것을 가르쳐주느라 귀 쫑긋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반복되는 일뿐이라 일본어를 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일본어 능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응대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파트너가 나와서 도와줘야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10월에 어학교 수업이 오전반으로 옮겨졌을 때 일하기 싫어질 무렵이라 옳다구나 싶어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점장에게 말했는데 평일 근무시간을 1시간 빼주는 바람에 그만둘 타이밍을 놓쳤었다.

10월 내내 정말 일하기 싫었다.

한번 그만둬야지 하고 맘먹고 나니 하기 싫은 이유만 겹겹이 쌓여갔다.

밤이 길어져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쌀쌀한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것도 힘들고 주말에 늦잠 자지 못하는 것도 힘들었다.

알바하고 난 후 바로 오전수업을 하는 날엔 몸도 피곤했다.

게다가 오후 시간이 비면서 남는 시간 아깝다고 탁구교실에 요리교실까지 신청했더니 몸이 피곤해져서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곤욕이었다.

이러저러 다양한 이유들 중에 알바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스키교실이었다.

12월 16일부터 스키교실에 시작되는데 주말 알바를 하게 되면 도저히 삿포로 근교의 스키장까지 시간에 맞춰 갈 수가 없다.

하루라도 빨리 그만둔다 말을 해야만 했다.




참 어렵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며칠 전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어학교 수업시간에 맞춰주기까지 하면서 내가 일할 수 있게 배려해 줬는데 3개월 만에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게 내가 생각해도 참 얌체 같다 느껴져서 정말 고민 많이 했었다.

차마 솔직하게 스키교실 간다고 그만두고 싶다 말할 용기가 안 났다.


“일을 그만두고 싶어요.”


“왜?”


“일하고 나서 바로 수업하러 가는 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 미안합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언제까지 나올래?”


어? 너무 쿨하잖아?

나를 붙잡고 설득할 거라 예상했었는데 이건 내 예상과 너무 달랐다.

어젯밤에 번역기에 온갖 변명을 줄줄이 써놓고 달달 외워가며 준비했는데 완전 헛다리 짚었다.

적어도 새로 사람 구할 때까지는 있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달까지만 다니겠다고 했더니 점장은 바로 오케이 했다.

생각 외로 쉽게 풀린 고민에 신나서 집에 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좀 이상했다.


어쩌면 점장은 내 입으로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 건 아닐까?

수업시간이 바뀐다 했을 때도 나는 어쩌면 좋겠는지 점장에게 물어봤을 뿐이었다.

점장이 그만두라고 말해주길 속으로 바라기만 했지 확실하게 내입으로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았었다.

두 달 만에 그만둔다 하기가 염치없어서였다.

하지만 빈말이라도 붙잡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걸 보면 내가 그만두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이 오십이 넘은 외국인 여자가 일해보겠다고 면접 보러 왔으니 일단 채용은 했는데 아무래도 일본인을 고용한 것보다는 효율이 낮았을 테니까.

언어가 딸리니 이것저것 일을 시키기도 힘들고, 손님 응대에도 한계가 뚜렷하고, 그렇다고 누군가가 계속 내 옆에서 지원을 해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을 수도 있겠다.

일하는 시간 동안 대화가 가능하길 하나, 알아서 일을 찾아 하기를 하나(못하는 거예요 ㅠㅠ ) 학교 수업이며 가족방문이며 다른 알바생에게는 없는 이유들로 쉬는 날도 많고…

이래저래 양에 안 차는 알바생이지만 눈에 띄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으니 차마 그만두라 먼저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어쩌면 법률적인 문제가 걸려 있을 수도) 눈치만 봤는데 스스로 그만둔다니 얼씨구나 했을 수도 있겠다.


상황이 어쨌든 간에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하다.

점장의 속마음 같은 거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열흘 남짓 남은 기간 동안 3번만 일하러 가면 된다.

부디 무탈하게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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