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토리 Dec 02. 2023

계절성 우울증 극복하기

숸 살의 유학일기 - 겨울편 #1

날이 추워지고 눈이 내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삿포로의 겨울이 왔다.

나는 눈을 기다렸었다. 아침마다 커튼을 젖히면서 눈이 내렸기를 바랐다.

그리고 11월 12일 첫눈이 내렸고, 그 후로 거의 매일 조금씩이나마 눈이 왔다.

그런데 내게 눈과 함께 이상한 것이 찾아왔다.

우울증…

멀 해도 재미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멍하니 있다 보면 울고 싶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한국에 있는 진짜 우리 집에 가고만 싶어졌다.

이유가 뭘까,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우울할까…

네시만 되면 해가 져서 깜깜해지는 삿포로의 겨울.

밤이 너무 길다.

학교 수업도 재미없다. 12월 3일 JLPT 시험을 대비해 11월 내내 매일 모의고사만 보고 있다.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오는 날도 있다.

해가 짧으니 일조량도 부족하고, 추우니 밖에 나가질 않아 활동량도 부족하고, 혼자 있으니 긴 밤 심심하고…

따지고 보니 우울하지 않을 이유가 없네…

경기도 시골에 사는 우리 친정엄마가 겨울만 되면 늘 울적해하셔서 내가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놀리고 그랬는데 막상 나한테 닥치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 엄마, 미안 ^^; 한국 돌아가면 안 놀리고 잘할게.


그래서 여행을 다녀왔다.

멀리는 못 가고 여름에 막둥이와 다녀왔던 비에이로 혼자 당일치기 버스투어를 다녀왔다.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한국 관광객들 틈에서 모국어를 원 없이 들었다. 속이 시원했다.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며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온갖 폼을 잡고 사진도 찍었고, 오지랖 넓게 커플들 사진도 자진해서 찍어주면서 칠랄레 팔랄레 정신 놓고 놀았다.

살까 말까 고민도 안 하고 아이스크림이며 사이다며 열쇠고리도 막 샀다. 그래봐야 다 합해 2000엔도 안 나왔지만.

하루를 온전히 내려놓고 놀고 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여행 다녀온 다음 날, 남편이 카톡으로 사진을 한 장 보냈다.

12월 30일~1월 2일 인천-삿포로 왕복항공권 사진이었다.


“우리 쉰세 살은 같이 맞이하자구”


이 남자, 내 속을 훤히 읽는구먼!!

거짓말 같이 우울증이 사라졌다.

우울증이 아니라 향수병이었는가 보다. 아니, 상사병이었나…? ㅎ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