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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Aug 25. 2019

3. 당신이 팀장이던 부장이던

한 달에 1,2번 꼴로 캐나다 정부가 발표하는 엑스프레스 엔트리(EE). 이민신청자들의 학력, 나이, 경력을 점수화한 뒤 높은 순서대로 영주권 초대장을 나눠준다. 경쟁이 치열하다.

의미가 없었다, 한국에서의 경력은...


    캐나다에서 이민을 꿈꾸며 일을 시작한 30대, 40대의 특징은 한국에서 중산층 또는 그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팀장이나 차장, 부장 등 어느 정도 자기가 하던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일이 많아지고 있을 때 이민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영어에 자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캐나다 정부의 익스프레스 엔트리(Express Entry: EE)는 이민희망자의 나이, 학력, 경력, 직장경험, 캐나다에서 직업을 갖고 있는지 여부와 영어점수를 모두 수치화하여 점수로 보여준다. 이 조건을 갖춘 사람들끼리 한 어장에다가 풀어놓고 캐나다 정부가 구미에 맞는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방식이다. 형제자매가 캐나다에 사는 것이 가산점이 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투자이민으로 영주권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과거 돈만 내면 영주권을 쉽게 내주던 이민정책의 단점이 많았다는 점에 기초해 10년 전부터 이민제도를 정비해왔다. 젊고 영어를 잘하며 캐나다에 세금을 내면서 경제에도 활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 결실물이 엑스프레스 엔트리(EE)다.


    주로 3가지 조건 중 하나가 되면, 캐나다 정부 홈페이지에 자신의 프로필을 올려놓고 주기적으로 뽑는 초대장(ITA)을 받을 자격이 된다. 첫 번째, 전문기술인력(Federal Skilled Worker)으로 자기 나라에서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영어 점수가 상(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4가지 영역이 각각 CBL 7 이상 점수를 갖고 있어야 한다)에 속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집수리 기술이나 전기, 도배 등 특정 기술을 갖추고 있는 사람(Federal Skilled Trades)다. 세 번째는 경험 이민(CEC: Canadian Experience Class)으로서 캐나다에서 직업(직업 분류 코드인 NOC A, B인 경우)을 갖고 1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스시집 쿡, 식당 푸드서비스 슈퍼바이저, 주유소 및 소매업 매니저 등이 한국인들이 많이 도전하는 분야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민주당 이민정책도 이민 희망자들이 더욱 많이 들어온 배경이 되었다. 아마드 후센 연방이민부 장관(이민 장관도 백인이 아니다)이 2018년 발표한 ‘2019-2022년 새 이민자 목표 계획’에 따르면, 연간 이민자 수용 목표를 전체 인구의 1%를 기준으로 향후 3년간 총 102만 18000명을 수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2015년 27만 1833명, 2016년 29만 6379명, 2017년 28만 6479명이 캐나다 영주권자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호주 정부의 폐쇄적인 이민정책으로 고민하던 사람들이 더욱 캐나다에 매력을 느낀 것도 당연하다.


    토익, 토플 시험을 통해 자신이 ‘어느 정도’ 영어가 된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중산층들도 이 경쟁대열에 합류 중이다. 영어점수는 IELTS 또는 CEPLPIP(캐나다에서 개발한 공인 영어인증시험) 성적이 필요하다. 엑스프레스 엔트리(EE)에서 가산점을 받는 석사 박사 학위소지자, 한국에서 경력이 3년 이상 되는 사람들은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밴쿠버에서는 "서로 학력을 물어보지 않는다"는 농담도 있다. 서울대 졸업자가 트럭을 몰고 연고대 도배장이가 하우스를 수리한다고들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이민을 꿈꾸며 들어온다는 비유일 것이다.


    아이가 최소 두 명 이상인 30대들도 캐나다는 충분히 매력이 있다. 시민권자 영주권자 이외에 워크퍼밋(Work Permit)을 소지한 가정의 아이들은 공립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다. 또는 엄마나 아빠가 교육청에서 인정하는 컬리지, 대학을 다닐 경우 부모가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이때 자녀들도 공립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다. 나는 다둥이 한국인 가정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아이가 3명인 집은 다 한국을 떠나서 캐나다로 오는 것만 같았다. 부모 중 한 명이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면서, 아이들 3명  영어교육만 시켜도 큰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팀장이든, 차장이든, 부장이든 한국 직장에서의 역할은 아무래도 좋다. 캐나다에서 새로 구하는 직장은 예전보다는 규모가 작고, 대부분 전혀 해보지 않은 직업일 확률이 크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던 육체노동이 주를 이룬다. 모텔에서 하우스키퍼 역을 하거나 에어비앤비를 여러 집 굴리는 고용자 밑에서 청소업무를 맡는다.


    평범하게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의 영어는 캐나다인만큼 되지 않아 사무직으로는 취업을 할 수 없다. 반대로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면, 단순한 노동의 기회도 오지 않는다. 영어는 읽고 쓰고 말할 줄 알면서, 외국인보다 빠릿빠릿한 한국인의 성실함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 주 외곽의 한 식당은 캐나다 백인 청년들이 주를 이루던 서버들을 최근 한국인들로 바꾸기 시작했다. 동네 청년들의 불성실함이 이유였다. 캐나다는 2018년 대마초(카나비스)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허용하였다. 음성적으로 이미 많이 소비하고 있는 만큼 세수확보를 위해 양성화시킨 것이다. 예쁘게 새로 생긴 카페 같은 곳은 카나비스를 피우는 카페일 확률이 높다.


    담배나 술보다 카나비스를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여기에 빠져드는 청년들도 많아졌다. 캐나다의 급료는 월 1회가 아니라, 2주에 한 번씩 나온다. 그런데 이 외곽지역 식당의 서버 몇 명은 카나비스 살 정도의 돈만 모이면 만족하고, 일을 갑자기 그만두거나 갑자기 “못 나온다”며 불성실하게 구는 경우가 생겼던 것이다.


    기분도 들쭉날쭉했다. 카나비스를 할 때, 시각과 청각 감각이 엄청 세심해진다고 한다. 잘 들리고, 잘 보이고, 기분도 좋아진다. 일을 잘했던 한 남학생 서버는 기분이 좋은 ‘하이(high)’한 날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일도 거침없이 해냈지만, 우울해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주인 입장에서는 직원 관리가 너무 힘들어진 것이다. 반면 한국인들은 술을 마시는 경우는 있지만, 아직까지 카나비스에 빠져들진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마약류라는 기피하는 마음도 있고, 외국까지 나왔는데 열심히 돈을 모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려는 ‘새마을 정신’이 우리 DNA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들로 한국인은 영어는 부족해도, 일할 기회는 많다. 하지만 자신이 한국에서 누려온 위치만큼을 여기서 기대하면 안 된다. 혹자는 그 간극을 스스로 잘 메꿔나가지 않으면 먼 나라에서 온 ‘노예가 된 왕족’으로 자신을 여기며 캐나다 사회에도 적응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은 고귀한 나라에서 온 왕자고 공주인데, 갑자기 어느 날 허름한 마구간에서 해본 적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일리 없어’ ‘나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야’ ‘왜 나한테 이런 대접을 하는 거지?’ 이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본국의 자신이 그 무엇이었든 간에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지를 못한다. 남들에게 민폐만 끼칠 뿐이다.

 

    자기 자신이 이민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아마 우리가 인천이나 부평역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국사회의 외국인 노동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고, 수많은 외국인 중에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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