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놀이...?
처음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몇 일간은 시차적응이라는 핑계로 쉬었다. 새로 일할 직장에 찾아갔다. OOO Produce. 우리로 따지면 채소 도소매상이다. 한국에서 상담을 받고 이주공사에게 소위 ‘컨설팅’을 받아서 소개받은 곳이었다.
한국에서 들고 간 이민가방에 회사에서 입었던 정장 여러 벌과 검정색, 회색 구두들도 다 싸서 왔다. 첫 인상이 중요하지 않은가. 일종의 면접을 겸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잘 차려입었다. 물론 채소가게에서 일할 때는 편한 복장에 운동화가 맞겠지만, 그래도 첫 날이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라는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남색바지에 위에는 흰색 남방을 입었다.
채소가게의 사장님은 부모님을 따라 이민온지 30년이 넘은 2세대였다. 20세 때 캐나다에 왔지만 이후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했다. “인상이 좋네요. 나 이렇게 채소가게해서 먹고 살아요. 특별한 일 없고, 어려운 일 없어요. 잘 지내봅시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장님의 인상은 수더분하고 편해보였다. 나의 구두는 하이힐도 아닌 뭉툭한 굽이었지만, 프로듀스 가게와는 맞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한국인 남자 직원들도 모두 편한 복장에 수레를 끌고 다녔다.
출근은 아침 8시였다. 내 일은 매일, 하루에 약 두 번 큰 트럭에 실려서 수시로 내려지는 채소와 과일을 손님들이 오가는 판매대에 상품을 예쁘게 진열하고, 바닥이 나지 않게 수시로 디스플레이를 하는 역할이었다. 물건을 풍성하게, 먹음직스럽게 진열하는 일이 나의 주요 업무였다. 나중에 계산하는 캐셔 업무를 맡은 것에도 대비해 가격과 이름을 틈틈이 외워둬야 했다.
가게는 좁았지만 고객 회전율은 엄청났다. ‘세이프웨이(Safeway)’나 ‘세이브온푸즈(Save-on-foods)’와 같은 큰 마트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 한인들이 동네 상권을 뚫는 일은 쉽지 않다. 유통은 유대인과 중국인 자본이 잡고 있는 경우가 많고, 네트워크가 끈끈하지 않은 한국인이 비즈니스로 일어서기란 어렵다. 결국 가격과 상품으로 캐나다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살아남는다.
캐셔로 일하는 젊은 사람들의 머리는 비상했다. 수십 종류가 넘는 채소와 과일의 겉모습만 보고도 파운드당 가격을 모두 외워서 계산을 했다. 1.99$/Lb, 2.99$/Lb. 대형마트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스캐너로 찍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스캐너로 찍고 가격표를 붙이는 것 자체가 많은 인건비와 시간을 요한다. 사람이 외워서 하면 중간과정에 드는 시간을 생략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가 대체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람의 영역이었다. 가격도 수시로 변해서 매일 아침 캐셔들은 가게를 둘러보며 가격변동이 있는 상품은 메모지에 간단히 적어두고 암기하기도 했다.
나는 수레를 좁은 통로에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상품을 진열했다. 처음 보는 생경한 식물과 과일들도 있었다. ‘엔다이브(Endive)’는 우리 말로 치커리였다. 그리스 사람들이 특히 좋아했다. 벨지언 엔다이브라고 하는 작은 배춧잎처럼 생긴 잎채소도 있었다. 캐비어나 연어와 같은 진귀한 음식을 배춧잎 한 장, 한 장 위에 놓아서 파티 음식으로 먹는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패넬(Fennel)’은 마치 하얀 파이프 악기처럼 생긴 식물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먹는 음식일까 궁금했다. 향이 좋아서 샐러드에 잘라서 넣는다고 샜다. ‘샬롯’은 고급중국음식이나 유럽 사람들이 고급스럽게 먹는 작은 핑크색 양파였다. 보라색 양파, 하얀색 양파 말고 이 조그맣고 탐스런 양파는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양파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풍미로, 마늘의 알싸한 맛을 합쳐 놓은 듯해서 프랑스 요리의 기본향신료라고 한다.
‘파스닙(Parsnip)’은 겉보기에 탈색된 당근모양이었다. 색깔은 노르스름한 흰 색이었다. 파스닙이 없으면 “언제 파스닙이 들어오나요”라며 백인 손님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단맛이 나서 청을 담궈먹을 때 쓴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음식점에서 보니 파스닙을 작게 잘라 기름에 볶아 내기도 했다. 채소를 통해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배우는 점이 좋았다.
한국에도 있는 것이지만, 영어로는 이름을 몰랐던 것도 있었다. 부추는 차이브(Chive). 몇 번 들어서야 알았다. 발음이 너무 굴러가서 못 알아듣는 것도 있었다. “웨어 이즈 베이즐(베이즐 어딨나요)?” 베이즐? 베이즐? 알고보니 파스타나 피자 위에 올릴 바질(Basil)을 찾는 것이었다. 바질은 많이 들었는데….
손님들은 직원인 나에게 묻는다. “타임 어딨어요?” 나는 되물었다. “네? 무슨 시간이요?” 타임(Thyme)이라는 허브의 일종이었다. 간단한 단어거나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새 눈치챌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은 새로운 입력을 해야만 했다.
채소와 과일이 잘 팔리려면 로테이션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이느냐, 어떻게 매력적으로 잘 쌓아놓느냐가 중요하다. 디스플레이는 손님과의 머릿싸움이다. 손님은 가장 신선한 것을 원한다. 그러나 하루이틀만 지나도 손님은 ‘신선하지 못하다’며 기존에 있던 물건을 뒤적거리며 새로운 물건을 갈구한다. 조금이라도 거뭇거뭇한 끝 부분이 남아있으면 한참을 뒤적거리며 애써 쌓아올린 상품을 무너뜨리기 일수였다. 채소가게도 이게 대응하여 직원들이 ‘손질’을 해서 둔다. 샐러리 끝을 1cm 살짝 커터칼로 쳐내서 ‘이발’을 시켜놓으면 손을 안 댔을 때보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손길이 그리로 향한다. 시금치도 상한 잎은 몇 개 떼어내고 예쁘게 묶으면 다시 날개 돋힌 듯 팔린다.
내가 일하던 일터는 백인과 중국인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아무리 부자여도 자기가 손해나는 1달러는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의심이 많다. 아무리 위에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있어도 “(우리를 속이려고) 진열대 뒤쪽이나 맨 아래에 쌓아둔 것이 제일 신선하고 최신꺼일 거야”라며 10분 넘게 계속 뒤적거렸다. 혹시라도 뒤적거리다가 물건이 상할까봐 조금만 갖다놓으면 어떨까. 남아 있는 물건 같아서 손님들 손이 가지 않는다. 최대한 아름답고, 탐스럽게, 풍성하게 쌓아놓은 모습을 보여야 했다.
나의 솜씨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애써 쌓은 파프리카나 사과탑은 손님들이 조금만 뒤적거려도 금새 무너져버렸다. 생각이 너무 경직적이라고 사장님은 혀를 찼다. 숙련되면 한다고 하는데 좁은 공간에 어떻게 잘 쌓아야 하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 번은 플라스틱 박스에 포장된 유통기한을 잘못 읽은 적이 있다. 날짜/달/연도로 표시되어 있는데 맨 뒤에 나온 ‘19’를 2019년이 아닌 ‘일(day)’로 착각해서 본 것이다. 변명하고 싶었지만, 바보같은 실수였다. 결국 가장 최신 상품은 앞쪽에 뒀고 오히려 빨리 판매해야 하는 상품은 뒤쪽으로 밀리게 잘못 디스플레이했다. 고객들은 나처럼 대충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상품을 사려고 기를 쓴다. 뒤에 잘못 전시했던 상품들은 더욱더 팔려나갈 기회를 잃고 말았다.
“지금 금수저가 흙수저 놀이하러 왔어요? 이거는 전쟁터에요. 한국에서야 대접받고 살았겠지만, 이게 장난으로 보이냔 말이에요.” 한 번은 따끔하게 말해주려고 했는지 작정하고 사장님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민온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최근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온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매일 네이버로 고국의 소식을 듣고는 있지만, 이들이 직접 겪은 한국사회는 1990년대에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이민사회에서 이런 저런 고생과 어려움을 겪고 일어난 사람과, 이제 막 한국에서 캐나다로 도착한 직원 사이에는 생각 차이도 크다. 우선 이들은 한국이 살만해졌는데 왜 이민 오냐고 되묻는다. 특히 사무직을 하며 한국에서 그럭저럭 살아온 중산층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오는지 의아해한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채소 가게 일도 재밌고 사람들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한국인, 주요 고객은 백인, 운전을 수시로 오는 운전기사들은 세계 각지에서 이민의 꿈을 안고 온 사람들이었다. 배달하는 사람들은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서로 발음은 고향말이 조금씩 묻어났지만, 신기했다. 농수산물도 주식처럼 가격변동을 잘 타면, 창고에 쌓아놨다가 더 좋은 가격으로 비싸게 소비자한테 팔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유통회사의 귀여운 소년 그림과 로고가 박혀 있는 회사는 유대인 자본이라고 했다. 직접 재배한 농부보다는 유통하는 사람이 더 큰 이득을 취한다고 했다. 책으로만 읽던 경제를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