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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Aug 27. 2019

5. 그 남자도 쥐가 무서웠을텐데

늘 청결함을 유지하려고 해도,  채소가게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다. 어떻게 막아도, 쥐들은 그 '천국'을 향해 돌진한다.


여기서 ‘여자놀이’ 하지 말아요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한국인 워킹홀리데이 청년은 “한국 여자들보다는 외국 여자직원들과 함께 일하기가 더 편하다”고 했다. 몇몇 자신보다 나이어린 한국 여자 직원들이 힘들거나 몸을 쓰는 일을 남자인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루는 모습에 질린 것 같았다. 같은 워킹홀리데이끼리 똑같은 시급을 받는데, ‘정’ ‘오빠’라는 이유로 여기까지 와서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외국인 직원들은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이 짐 나르는 것도 공평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에서 살면서도 우리는 한국적인 관습이나 습관을 버리지 못할 때가 있다. 

 

    채소가게에서 일할 때도, 한국적인 정서가 아직 남아 있었는지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어 보이면 남자 분들이 도와주려고 했다. 사장님도 한국적인 정서 때문이었는지, 아예 여자들은 작은 채소를 포장하는 일을 맡겼다. 요즘은 지게차나 수레가 있어서 무조건 힘을 쓰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종의 차별을 두었던 점은 사실이다. 

 

    문제는 어느 날 쥐가 출몰하면서 부터다. 먹을 것이 잔뜩 쌓여있는 가게의 어느 틈을 쥐가 노리기 시작했다. 레드페퍼(파프리카)를 갉아먹은 쥐 흔적이 생기길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해 쥐가 상품을 훼손하지는 않았나 살펴보았다. 덫을 놓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은 피가 흥건하게 번져 있었다. 강력한 먹이와 덫을 놓고, 그 다음날 쥐가 잡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전 출근 때 잡혔는지 아닌지 눈으로 확인하기가 두렵긴 했다. 같이 일하는 남자직원이 먼저 들어가 쥐가 잡혔거나 어지럽힌 옥수수 가루가 있으면 치우고 가게 불을 켰다. 

 

    그 다음 날이었다. 버스가 안 와 15분 정도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날, 몇 일 동안 잡히지 않던 쥐가 아침에 잡혔던 모양이다. 그 남자직원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사장님은 하지 않으려 하고, 나는 심지어 늦게 오고 말이다. 그런데 지각하는 모습을 보고 사장님께서 뭐라고 하셨다. “지금 쥐 처리하기 싫어서 늦게 온 거에요?” 

 

    정말 버스가 안 오고, 처음 늦은건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에서 금기는 ‘변명’아닌가. 이러쿵 저러쿵 내 변명을 해봐야 나만 궁색해질 것이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늦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지만, 부족한 디스플레이 실력과 더불어 나의 잘못된 점을 다시금 여러 차례 지적 받았다. 

 

    나는 아직 이주공사의 소개만 받았을 뿐, 캐나다 정부로부터 워크퍼밋(노동허가비자)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사장님의 마음에 들어야했다. 사실 캐나다 영주권의 모든 시작은 고용주가 받는 노동시장 영향 평가서: 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일명 LMIA)와 이를 바탕으로 받는 워크퍼밋이 중요했다.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세금을 내고 1년간 풀타임으로 일했을 때 도전할 수 있는 경험이민(CEC)은 캐나다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주요한 방법 중 하나다. 

 

    고용주의 역할이 크다보니, 직원은 자연스레 ‘을(乙)’이 되기 쉽다. ‘이 사람이 정말 필요해서 꼭 캐나다에 써야 합니다’라는 일종의 신원보증을 하는 셈이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만들고 서로 잘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민 도전자들이 한국인 고용주 밑에서 일을 많이 하는 이유는 캐나다인 고용주들은 LMIA와 워크퍼밋을 받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꺼리기 때문이다. 세무 서류까지 공개해야 하는데 영어도 자유롭지 않고, 캐나다인도 아닌 사람을 그 공을 들여가면서 쓰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주 전문직일 경우 받는 사례가 있긴 하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갑을관계로 인해 성희롱 성추행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밴쿠버의 한 치킨집에서는 한국인 고용주가 워킹홀리데이로 온 20대 여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종종했다. 남녀 사이에 연애를 위해 남자가 먼저 접근할 수 있지 않냐고? 사장은 유부남이었다. 자기보다 어린 여학생들이 뭐가 좋아서 연애를 하고 싶겠는가. 그 치킨집은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공유하는 ‘일하기 안 좋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자유로운 비자를 갖고 아무데서나 일할 수 있는 오픈 워크퍼밋을 갖고 있는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은 그래도 선택권이 있다. 영주권을 위해 취업이 자유롭지 않아 어렵사리 일할 곳을 찾은 30대 후반과 40대는 운신의 폭이 좁다. 워크퍼밋은 ‘Closed’와 ‘Open’이 있는데 ‘Closed’ 워커퍼밋은 신청 당시의 영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다. 주신청자의 클로즈드 워크퍼밋을 통해 배우자가 받는 오픈 워크퍼밋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아무데서나 일할 수 있다. 그만 둘 자유도 있다. 그러나 영주권을 신청할 경우는 클로즈드 워크퍼밋을 갖고 고용주가 영주권을 지원해줘야 필요한 점수를 확보할 수 있다.     

 

    외곽지역의 일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취업한 여성 B씨는 부푼 꿈을 안고 캐나다로 왔다가 낭패를 당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 이민을 꿈꿨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일하다보니 ‘사모님’이 자신과 사장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고 다른 직원들도 다 알고 있었지만 사장 부인의 의심은 더욱 커졌다. 외곽도시에 사람도 한적하다보니, 얼굴이 아름다운 직원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 같다. 


    수 개월간의 불화와 폭언을 견뎠지만, 결국 사장 부인은 B씨를 해고시켰다. 이주공사에 LMIA 서류를 받기 위해 낸 대행수수료와 각종 신체검사비 등 10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상처가 많았던 B씨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동안 들인 돈도 돈이지만, 캐나다에서 상처만 받은 아들에게 미안했고 모욕감에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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