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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Sep 03. 2019

6.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 것

휘슬러산 정상에서 만난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 문명의 이기로, 돈만 주면 케이블카를 타고 휘슬러 정상을 맛 볼 수 있다.

한국의 고학력자들


    나보다 먼저 캐나다에 들어와 영주권을 바라보며 일을 하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조언이 있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마세요.”

    무슨 소리인가 했다. 자기연민.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말라는 소리인건가? 자기연민은 말하자면 자신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왜 영어가 안들리지? 나 영어 점수가 괜찮았었는데” “내가 이제는 이런 취급까지 당하는구나” 이런 생각들 말이다. 

 

    홈그라운드와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크다. 나는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직장생활을 한 것이 그렇게 큰 특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한국인으로 태어났을 뿐이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자연스러운 한국말. 그 소중함을 한국에서 느끼면서 매일 감사했던 사람이 있을까. 없었을 것이다.


    은행에 갔다가 ATM 사용을 마치고 뒤돌아 설 때였다. 코커시안 인종으로 보이는 남자 노인이 갑자기 “하 와 유(How are you)?”라고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서 뭐라고 대답할까 1,2초 잠시 머뭇거리는데, 그 노인이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칭챙총”과 비슷한 중국어 흉내를 냈다. 불쾌했다. ‘칭챙총’은 백인들이 중국어의 어투를 웃기려고 만든 발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영어 사용자들에 “샬라샬라한다”라고 하는 말도 그들에게는 불쾌한 표현일까? 그 노인의 말에 갑자기 확 기분이 상했지만, 굳이 여자 혼자서 외진 ATM기계 앞에서 뭐라고 따져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 문을 나서며 불쾌한 표정을 그 노인에게 지어 보였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동양인이 많은 동네여서 불만이 많은 건가? 의미 없는 문장 한 마디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내 모습도 평소 나답지 않았다. 

 

    동양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자각 뿐 아니라 영어로 인한 장벽은 곳곳에서 느낀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외모와 영어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 동양인이지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은 백인이어도 유럽 곳곳에서 온 사람들의 영어발음이 썩 좋지 않을 때가 많다.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감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다. 문법은 엉망진창인데 상대방과 대화를 1시간 이상 거침없이 이끌어나간다.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몇 마디 친절하게 말을 붙여보고, 영어를 잘 못하거나 대화가 잘 안 되면 상대방은 지나가 버린다. 영어학원이 아닌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사람을 계속 붙들고 시간을 쓸 캐나다인은 별로 없다. 영어를 못할수록 사회에 속해 소속감을 느끼며 뭔가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방인임을 매 순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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