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 후 쇼핑앱을 부유하는 사이, 사라지는 시간들

[산후우울증 생존자의 수기8] 넓고도 깊은 육아용품의 세계

by 쓸쓸

넓고도 깊은 육아용품의 세계


젖병, 젖꼭지, 젖병소독기, 분유, 배냇저고리와 내복, 속싸개와 겉싸개, 바운서, 모빌, 바구니카시트, 아기띠…… 물려받은 출산용품을 확인하고, 빠진 물품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적당한 것을 추려 결제하기. 아이의 퇴원을 기다리며 한 일들이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을 유예할 수 있던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가 클수록 사야하는 육아용품은 종류를 달리해가며 끝없이 등장했다. 바구니카시트 사용 시기가 지나면 일반 카시트를, 손을 빨면 공갈 젖꼭지를, 이가 나면 치발기를,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이유식 용기와 도구를 사야했다. "옛날에는 그런 거 없이도 키웠어." 어른들은 말했지만, 육아의 틈새 곳곳마다 수많은 상품이 포진해있는 상황. '그런 거'를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꼭 필요한 게 맞는지 돈지랄은 아닌지, 검증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무언가 사기로 했다면 가격과 성능은 물론 안전한지, 유해성분이 검출되지 않는지 따져야 했다. 물티슈와 기저귀는 직접적으로 피부에 닿고, 놀이매트는 하루종일 디비적거리는 곳이고, 주방세정제는 그릇에 잔류해 입으로 들어가니까…… 잊을 만 하면 물티슈, 기저귀, 놀이매트, 주방세제, 아기욕조에서 기준치 00배 이상의 유해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한편으로는 젖병소독기가 분유수유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듯, '육아템빨'의 은혜를 기대하기도 했다. 한 지인은 타이니러브모빌이 화장실 다녀올 시간을 허락해주었다고 했고, 또다른 지인은 아기비데가 자신의 손목을 지켜주었다고 했다.


아는 엄마들과의 단톡방은 '유아차 디럭스를 살까요, 휴대형을 살까요?', '카시트 뭐 샀어요?' 같은 대화로 가득찼다. 아이를 재운 후에 습관적으로 핸드폰 쇼핑앱을 찾았다. '다행히' 살 것은 끊이지 않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조그만 생명체 대신 내 뜻과 욕망 대로 할 수 있는 세계가 거기 있었다. 투 두 리스트를 착착 처리하며 가시적 성과를 내는 노동자로 돌아간 느낌, 육아용품을 매개로 세상과 연결된 기분 속에서, 아이를 낳은 후의 지독한 혼란을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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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유아차를 써야 흔들린 아이 증후군이 예방된다고?


그러나 육아용품 쇼핑은 육퇴 후의 얼마 안되는 자유 시간을 갉아먹었다. 무엇보다 가격, 성능, 안전성을 비교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지적 노동, 긴장, 피로을 불러왔다. 그 정점은 유아차 쇼핑이었다.


비싼 유아차는 부모의 허영이라 생각했던 나는, 유아차를 알아보며 조금씩 불안해졌다. 유아차 업체들은 '작은 흔들림도 신생아에게는 치명적'이라며, 흔들린 아이 증후군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유아차를 써야 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아이는 뇌 관련 진단명이 있었고, 병원에 종종 가야했다. '튼튼하지 않은 저가 유아차를 타다가 머리가 흔들리면 어쩌지? 흔들린 아이 증후군이 위험하다는데...' 흔들린 아이 증후군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이에게 뇌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공포스러웠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이 도대체 뭐길래. 공포감과 별개로 호기심이 일었다. '뭔가 구라치는 냄새가 나는데?' 논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아이를 달래기 위한 방편이나 또는 아동 학대의 일환으로 아이를 심하게 흔들어서 여러 장기에 손상을 일으키는 증후군'(김종오 외, 2005)이다. 나는 이 증후군과 관련한 국내 논문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아이가 유아차를 타다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한 건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아이를 심하게 흔들 때 머리와 목이 채찍질처럼 순간적으로 빠르게 뒤로 젖혀졌다가 앞으로 돌아오는 흔들림이 20초 내에 40-50회 정도 있을 때 발생한다고 보고된다. 이 정도 흔들림은 아동 학대로라야 가능하다.


광고.jpg (흔들린 아이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고급 유아차를 사야한다는 너, 허위 과장 광고!)


나의 유아차 쇼핑기는 흔들린 아이 증후군 관련 논문 검색을 거쳐, 아이 셋을 키운 지인의 유아차를 물려받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으나, 유아차에 필요한 악세사리를 검색하고, 가방걸이, 컵홀더를 주문하며, 물려받은 유아차에 딱 맞는 유아차 커버를 찾고, 유아차 세탁법을 익히는 것으로 비로소 끝났다.




쇼핑앱을 부유하는 사이 사라지는 시간들


유아차만일까. 우리의 소비를 요하는 상품들은 점점 더 세분화, 전문화되어 있고, 일반인이 검증하기 힘든 의학적 병명과 교육학적 이론을 동원해가며 불안을 자극한다. '더 소비하라'는 전방위적 명령을 외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저자 마리아 미즈는, '여성이 소비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의 주된 전략'(<가부장제와 자본주의>, 273쪽)이라고 말한다. 생산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비하는 사람이 있어야 자본이 굴러가는 법. 여성이 집안의 살림을 관장하는 가정주부가 되면서, 자본은 가정주부 여성을 겨냥해 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한다. 가족을 돌보기 위한 가전제품, 청소용품, 먹거리, 아이 교육에 필요한 완구, 교구, 학습지, 외모를 가꾸기 위한 화장품, 옷, 샴푸, 가족의례를 위한 여행상품, 문화상품…… 여성이 관장해야할 소비상품은 점점 더 촘촘해진다. 그리고 이 '소비노동은 여성의 자유시간을 점점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위의 책, 273쪽)


육퇴 후 쇼핑앱을 부유하는 사이, 결제 버튼 하나로 손쉬운 자기효능감과 연대감을 만끽하는 사이, 나의 시간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핸드폰의 밝은 화면과 쏟아지는 정보에 시달리던 뇌는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비슷한 개월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블로그를 염탐할 때면, '육아=육아상품 소비'로 느껴졌다는 건 위로였을까, 위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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