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산후우울증 생존자의 수기6] 고통받는 엄마를 비난하는 사회의 민낯

by 쓸쓸


사라지지 않는 의문


아이의 재활이 종료되고, 평범한 육아의 나날이었다. 아이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발달하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아이를 갑작스레 일찍 낳으면서, 재활병원을 다니면서, 이른둥이 엄마들을 만나면서, 마음에 남았던 질문이다.


“왜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부모’의 문제로 퉁칠 수 없었다. 엄마와 달리 아빠는 이 감정에서 자유로웠다. 과거에 비해 아빠의 육아 참여가 높아졌다고 해도 죄책감, 불안, 자기분열과 같은 정신적 부담까지 함께 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갖는 죄책감은 온전히 엄마의 것이었다.


나의 질문에 해답을 찾고 싶었다. 엄마의 죄책감에 대해 정신과전문의가 쓴 책들을 찾아보았다.


"아이를 돌보며 생각과 감정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과 감정이 복잡해지다보면 객관성을 잃게 되어 개연성이 없는 일을 개연성 있게 받아들인 나머지 죄책감을 갖게 된다. 부적절한 죄책감은 엄마로서의 능력 자체에도 지장을 주고 아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하다."

-A 정신의학전문의가 쓴 육아서


"누가 당신을 못난 엄마라고 했나. 당신 자신이다. 내가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들고, 그런 냄새를 풍기고, 내 아이를 못난 아이로 만들고 있다."

-B 정신의학전문의가 쓴 육아서


유명 저자이자 남성 정신과전문의인 이들의 책은, 내가 만나고 겪은 엄마들의 고통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단지 엄마가 가진 죄책감에 대해 '아이를 돌보다보면 생각과 감정이 복잡해져 죄책감을 갖게 된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거나,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든 것은 나'라고 훈수둘 뿐이었다.


엄마의 죄책감은 취약한 내면의 문제만의 탓일까.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엄마를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는데도?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그랬다. 아이 재활치료를 다니는 지인은 ‘엄마가 애 잘못 낳아서 애가 고생한다’는 시가의 비난을 감내해야 했고, 아이가 사고로 입원한 지인은 ‘엄마가 애를 잘못 봐서 애가 다쳤네’라는 주위의 비아냥을 들었다. 엄마의 죄책감은 그 비난과 관계가 없을까?


여성의 입장에서, 엄마의 고통에 대해 해명하는 글을 찾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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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를 앓는 아이의 엄마가 겪는 모성 비난의 경험


자녀의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비난받는 어머니의 경험을 다룬 국내 연구자는 여성학자 김향수가 (내가 찾은 바로는) 거의 유일하다. 김향수는 아토피를 겪는 아이의 엄마(‘아토피 엄마’)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모성 비난의 경험을 연구주제로 다뤘다.


김향수가 만난 '아토피 엄마'들은 가족, 지역사회, 의료진에게서 아토피 발병 원인, 치료 방법에 대해 지적받으며, 지속적인 비난에 노출된다. (이러한 비난은 충고나 훈육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토피는 발병 원인이나 치료 방법이 상충되고 만성적인 질병이기에 엄마가 겪는 비난의 경험이 복합적이다. 한방약을 쓰면 '무식한 엄마'라고, 양방약을 쓰면 '독한 약을 쓰는 엄마'라고,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지면 '아토피 아이에게 맞게 생활환경을 관리하지 못한 게으른 엄마'라고, 알레르기 유발 요인을 세심히 살피면 '유난스럽고 예민한 엄마'라고 비난을 받는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특히, 아이들에 대해 어른들이 더 훈수를 두려고 하니까. 지나가다, 그냥 뭐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으면 지나가다 '애기네'하고 봤다가, 얼굴이 벌겋고 그러면 '어머, 애 버렸네' 이렇게 간다던가. 그런 일들이."


"아토피를 가지는 엄마에 대해서는 좀 약간 동정을 하거나, 질책하듯이 이야기하는 것 같애. 그러니까, 아토피라면 매운 걸 먹었나? 임신 때 치킨을 한 마리 먹었기 때문인가라고 생각을 하게 되지."

(*김향수. 2012. "아토피 자녀를 둔 엄마의 모성경험" 인터뷰 내용 중)



모성에 대한 숭배와 비난은 쌍둥이 관계


자녀의 건강 문제에 대한 모성 비난의 이면에는 ‘완벽한 어머니(perfect mother)’라는 이상이 있다. 자아를 포기하고 희생적으로 자녀를 돌보는 ‘완벽한 어머니’라는 이상은 역사가 깊지 않다. 산업화와 더불어 가정 바깥의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남성은 집 밖에서 일하고 여성은 집 안에서 육아와 가사에 전담하는 성별분업이 정착되었다. 노동시장의 가혹함을 완화해주는 역할로서 모성에 대한 찬양, 숭배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다.


모성에 대한 숭배는 모성에 대한 비난과 쌍둥이 관계다. 어머니가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어머니를 끔찍한 존재로 비난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 완벽한 엄마는 도달하기 힘든 이상이기에, 대부분의 엄마는 끊임없는 비난의 눈초리와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Caplan은 이 모성 숭배와 비난이 아동 복지, 의료 체계, 법정과 같은 현대사회 구조의 초석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주목해야할 것은, 20세기초 출산율 감소로 인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건강관리자'로서의 어머니 역할을 강조하는 담론이 부상했다는 점. 엄마는 '홈 닥터'로서 전문가들의 교육과 중재를 받아 자녀의 신체적, 도덕적, 사회적, 지적 발달을 관리해야 했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엄마의 노력으로 자녀의 질병이나 장애가 극복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치료되지 않은) 질병이나 장애는 엄마의 책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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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엄마에게 '네 탓이야' 비난하는 사회의 민낯


질병과 장애에는 확률, 사회적 인식과 환경, 의료 시스템, 계급과 인종, 규명되지 않은 수많은 요인들이 개입되어 있다. 이를 무시한 채 질병과 장애의 원인을 엄마의 잘못과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는 엄마를 극대화된 돌봄 책임에 밀어넣고, 사회적 개선 방안 모색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아이의 치료에 더 매진하게 된다. 좋은 어머니는 자녀를 치유할 수 있다는 이중 삼중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 문제로 고민하던 당시, 나 역시 이 신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더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아이를 낳은 후 한번도 떨쳐버리지 못했던 죄책감와 위축감이 서서히 그 민낯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이상적인 소수의 엄마 외에는 마음껏 헐뜯고, 엄마에게 돌봄과 양육의 책임을 모조리 넘기고, 자녀의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는 엄마에게 '네 탓/책임이야' 교묘히 비난하는 사회의 민낯이었다.


깊은 분노와 함께 해방감이 찾아왔다.



(*참고: 김향수. 2012. "아토피 자녀를 둔 여성의 모성 경험 : 어머니 비난과 젠더 정치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김향수.배은경. 2013. "자녀의 질환에 대한 모성 비난과 '아토피 엄마'의 경험" 페미니즘연구 제13권 1호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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