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마음 읽기 해주라더니 이제 와서 왜 이래?
“부모는 모두 좋은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아이를 키우면 되는데 잘 키우고 싶어하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얼마전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조선미 아주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의 말이다. 조선미 교수는 현실에서의 훈육 중심 육아를 주장하는 전문가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 중심이 아니라 부모 중심의 전통 육아를 강조하는 하정훈 원장 역시 최근 급부상한 육아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부모가 잘못 키운 금쪽이”(조선미), “오은영 육아 함부로 따라하면 안되는 이유”(하정훈) 등 두 사람이 출연한 유튜브 클립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오은영 박사의 육아법이 비판받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유튜브 클립의 댓글이 이 전문가들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차는 것을 지켜보며 읊조렸다. ‘오은영의 시대가 가고, 조선미, 하정훈의 시대가 오나?’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육아법의 대세는 ‘마음 읽기’이었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대해 우선 “그랬구나” 수긍한 후에 교육해야 할 바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이러한 육아법이 오은영 박사만의 것은 아니다. 2011년에 국내 출간된 최성애‧존 가트맨 박사의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행동에 한계를 지어주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감하기와 한계 지어주기 중 먼저 해야할 일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기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할 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는 것이다. 많은 국내 저자들의 육아서가 이에 기반해 공감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공감능력”(윤옥희 저 『초등 공감 수업』의 소개글), “엄마의 공감이 아이의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 (권수영 저 『아이 마음이 이런 줄 알았더라면』 소개글)
마음 읽기와 같은 공감 중심 육아법의 추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복잡하다. 공감 중심의 육아법이 성행하던 시기, “그랬구나”로 시작하는 대화법은 수학 공식처럼 견고했고, “안돼”, “하지마” 등의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면 몰지각한 엄마라는 시선을 맞닥뜨렸다. 나는 이러한 육아 문화가 (아이를 버릇없게 만든다는 세간의 비판 이전에) 육아를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게 변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양육자는 이제 ‘진상 부모’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가우면서도 당혹스러웠다. ‘언제는 마음 읽어주라더니 이제 와서 왜 이래?’
육아법이 확확 바뀌는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1950년대의 미국이 겹쳐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미국에는 행동주의가 유행하며 엄격하고 과학적인 육아방식이 선호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모든 것이 변했다. 전쟁으로 인한 피로와 상처 속에서, 관대한 육아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섀리 엘 서러의 <어머니의 신화>에서 인용한 한 엄마의 깨달음처럼, 이 변화는 굉장히 빠르게 일어났다. “나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야채를 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남인 피터가 자기 그릇을 깨끗이 비우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째 아들인 다니엘은 자기 그릇에 있는 음식을 반드시 먹어야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맛은 보아야 했다. 그리고 막내 빌리는 내가 관계되어 있는 한, 자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물론 양육자는 사회적으로 유행하는 육아법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아이라는 고유한 존재와 소통하면서 고유한 소통 방식을 만들어가는, 그리고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사회에서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육아법을 따르지 않는 양육자, 특히 엄마는 일상적인 주위의 비난을 마주한다. 이 비난은 대체로 유명한 육아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나의 아이가 영유아로 자라나는 무렵, 내가 가장 많이 듣던 말도 이것이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 이 시대의 '과도한 마음 읽기'는 조선미 교수의 말처럼 감정을 억압당한 부모 세대가 아니라, 이러한 육아법을 앞다투어 소개하고 강조한 전문가, 그리고 이들의 권위에 기댄 프로그램을 무차별적으로 생산해낸 미디어가 만든 것은 아닌가?
‘국민 육아 멘토’로 미디어를 군림했던 오은영 박사의 위세가 꺾인 시대, 오은영 박사의 틈새를 또 다른 전문가들이 메꾸고 있다. 쉬운 육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부상하는 것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조선미 교수가 “그냥 키우면 되는데 잘 키우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하면서도 아이 앞에서 해서는 안되는 말, 공공장소에서 효과적으로 훈육하는 팁 등을 가르치는 것처럼, 이들 전문가 역시 전문가의 권위를 빌어 구체적인 육아의 기술을 제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러한 전문가의 발언이 진리가 될 때, 이 발언에 맞지 않는 양육자는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육아법은 변해왔으며, 육아 전문가의 발언이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문가의 목소리보다 평범한 부모의 목소리가 유통될 때,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평범하게 육아하는 일상의 무게가 올라갈 때, 우리는 더 건강한 육아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