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우울 상태입니다'

[산후우울증 생존자의 수기 1]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by 쓸쓸

서울의 한 대학병원, 피곤한 낯빛의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조기진통이 잡히지 않아서 이제 낳아야 해요.”

“진통이 있을 때 아기 심박수가 떨어지기 때문에 위험해요.”

“더이상 약을 쓸 수 없어요.”

“이제 수술해서 낳아야 한다니까요.”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손이 벌벌벌 떨렸다. 순식간에 간호사들이 달려와 주사바늘을 바꾸고 수술복을 갈아입히고 회음부 제모를 했다. 수술장을 향해 요란하게 굴러가는 침대 바퀴 소리를 들으며, ‘오늘이 며칠이지’ 생각했다.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 될까, 아니면....’


2018년 1월 19일, 임신 29주 6일째였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조기진통으로 산부인과 입원을 한 건 26주째였다. 자궁수축억제제로 알려진 라보파를 맞으며 하루종일 누워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지속되었고, 라보파 용량은 늘어났다. 수축검사 그래프가 가파른 곡선을 그리던 아침, 인큐베이터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입원을 위한 여러 검사를 진행하던 무렵이었다. 옆자리 침대에 산모가 들어오는 소리. 분주한 발걸음과 대화가 오갔다.

“임신중독증입니다. 바로 분만을 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임신 27주, 아이는 700g이라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옆 침대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숨을 죽였다.

‘700g짜리 아이를 낳는다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그때는 나 역시 얼마 후 아이를 낳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 하루 전의 자궁수축검사 그래프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이는 1.63kg였다. 자가호흡을 하지 못해 기도삽관을 하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고 했다. 남편이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빨갛고 쭈글쭈글한 아이가 자기 입보다 큰 관을 입에 꽂은 채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한 건 인터넷 검색이었다. ‘조산’, ‘29주 미숙아’, '29주 이른둥이' 같은 검색어를 입력했다. 제왕절개 통증이 선명할 때면 진통제 버튼을 꾹꾹 눌러 약이 퍼지기를 기다려, 다시 검색을 했다. 수술 전, ‘지금 낳으면 살 수 있나요’ 물었을 때 산부인과 교수는 말했었다. ‘저는 산부인과 교수지 소아과 교수는 아니잖아요’. ‘제가 신은 아니잖아요’라고도 했던가. 나는 내게 닥친 일을 산부인과 교수와 같은 말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나와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했다.


인터넷 지식은 태아가 1kg이 넘으면 10명 중 9명 이상이 생존한다고 알려주었다. 다만, 건강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곳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병명이 가득했다. 신생아 호흡 곤란 증후군, 기관지폐이형성증, 백질연화증, 뇌성마비, 괴사성장염, 미숙아망막증, 동맥관개존증... 다시 검색창을 닫았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조기진통을 막지 못했고 이제 아이는 내 뱃속에 없었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그 싸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미역국을 몇 숟갈 뜨다 말았다. 지독한 산후우울증의 시작이었다.



'심한 우울 상태입니다'


의학적 연구들은 어머니의 우울증을 산후우울감, 산후우울증, 산후정신병 등 연속체적인 세 개의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산후우울감은 일시적인 우울감으로 출산 후 85%에 달하는 여성들이 경험한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 산후정신병은 산모의 0.1%-0.2%가 겪으며, 환각과 망상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산후우울감과 산후정신병 사이 어디엔가 위치하는 산후우울증은 산모의 10%-20%가 겪으며, 방치할 경우 산모 자신은 물론 유아의 발달과 가족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진희(2015)의 논문 『페미니스트 관계적 관점에서 본 좋은 어머니되기와 산후우울증 마우트너의 논의를 중심으로』,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참고)


산후우울감-산후우울증-산후정신병 사이, 나는 어디쯤 위치해 있었을까. 당시 나의 상태는 이랬다.

‘우스운 것이 눈에 잘 뜨이고 웃을 수 있었다.’

아니오.

‘즐거운 기대감에 어떤 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럴리가요.

‘일이 잘못되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탓해왔다.’

네.

‘너무나 불안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잘 못 잤다.’

그런데요.

...


산후우울증 자가진단(한국어판 에딘버러 산후우울 검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심한 우울상태’였다.

s03_082_g03.jpg 한국어판 에딘버러 산후우울 검사 내용 (출처: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산후우울증' 다섯 글자를 넘어


나의 우울은 조산이라는 특수한 출산 과정을 통해 스멀스멀 얼굴을 드러냈다. 누군가에게 '29주에 태어난 이른둥이인데요' 라는 말을 할 때마다 작아지던 목소리, 의사 앞에서 자꾸 숙여지던 허리, 뒤집기와 배밀이와 네발기기를 언제할까 어떻게 발달을 촉진해야할까 검색창을 뒤지던 손, 죄책감이 끈적한 껌처럼 들러붙어 있던 명치 끝 같은 것으로.


아이가 커갈수록 우울의 얼굴은, 누군가의 전화나 초인종 소리가 간절했던 한낮, 이대로 전업주부로 살아도 될까 막연한 불안감으로 뒤척이던 밤, 베티 프리단이 표현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1960년대 미국 전업주부들이 느끼던 공허감의 표현) 앞에서 멈칫하던 저녁 같은 것들로 변주되었다.


나의 경험, 감정, 생각을 그저 '산후우울증' 다섯 글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의 상태를 단순히 호르몬의 변화가 만드는 생물학적 문제, 아이를 베란다 난간 밖으로 던질 수 있는 반사회적이고 위험한 병, 정신과 의사나 상담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치료 가능한 병리적 문제로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우울 속에서 엄마되기의 보편적 경험과 의미를 길어올리고 싶었다. 의학적 문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포섭되지 않는 것-엄마되기의 과정에서 마주한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수용하고, 타협하고, 저항한 기록-을 드러내고 싶었다.


아이를 낳은 3년간의 우울을 좇는 기록을 시작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