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 신생아중환자실의 문이 열렸다

[산후우울증 생존자의 수기 2] 29w6d 1.63kg, 나의 아이

by 쓸쓸

출산, 철저한 무력감의 경험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출산 과정에서의 상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를 읽으면서였다.


(...) 출산은 역사적으로 생물학, 운명, 또는 우연에 의해 여성의 통제권이 상실되는 경험이다. 출산 경험을 바꾼다는 것은 여성과 두려움, 무력감의 관계, 우리 신체와 우리의 관계, 아이들과 우리의 관계를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광범위한 심리적, 정치적 의미까지 내포하게 된다.

(에이드리언 리치,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소외된 진통」, 202쪽)


출산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내 몸에 대한 철저한 무력감이었다. 예상치 못한 조기진통이 시작되었고, 나는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내 몸에서 자란 아이를 만삭까지 지키지 못했다.


대학병원 의료 시스템 속에서 겪어야 했던 또다른 무력감이 있었다. 조기진통과 싸우던 마지막 며칠, ‘검사 결과가 안좋으면 바로 아이 낳을 거에요’ 회진 때마다 겁박하던 전공의들, 태아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 내게 ‘제가 신은 아니잖아요’ 냉랭하게 대꾸하던 교수, 처치 과정에 대해 결코 설명해주지 않던 간호사들... 대학병원 의료 체계와 기술이 내 아이를 살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모에 대한 정서적 지지나 충분한 설명은 없었다. 나는 무력했고 겁에 질렸다.


출산은 ‘나 자신의 통제권이 완전히 상실되는 경험’(위의 책, 202쪽)이었다. 그 경험은 제왕절개 흉터만큼 마음에도 선연한 상처를 냈다.


그러나 나의 상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29w6d 1.63kg, 나의 아이


아이를 낳고 하루 뒤, 남편의 어깨에 의지해 신생아중환자실로 향했다. 자기 몸보다 큰 기저귀를 찬 아기새 같은 아가들, 퇴원을 앞두고 젖병을 세차게 빠는 아가를 지나, ‘29w6d 1.63kg’ 알림판이 붙은 인큐베이터 앞에 섰다. 나의 아이였다.


이르게 태어난 아이는 생명과 얇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를 완연한 생명의 세계로 끌어오기 위해, 위압적인 기계들이 필요했다. 작은 몸은 기계들에 연결된 수많은 선으로 가득했고, 얼굴은 호흡기에 가려져 않았다. 기계에서 발생하는 경고음이 삑삑거릴 때마다 간호사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남편은 아이를 돌봐주는 간호사와 전공의에게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남편을 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발밑으로 빨간 오로가 뚝뚝뚝 떨어졌다. 남편은 죄송하다 말하며 바닥을 물티슈로 훔쳤다.




그곳의 문은 하루 두 번, 12시와 6시에 열렸다


수술 4일째 퇴원을 하고, 신생아중환자실 면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곳의 문은 하루 두 번, 12시와 6시에 열렸다. 면회 신청서를 쓰고, 소독제로 손을 닦고, 가운을 걸치고, 신발을 갈아신고, 줄을 설 때면, 무거운 공기, 긴장한 얼굴들이 가득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을까, 선생님께 오늘은 무슨 이야길 들을까,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을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걱정이 피어났다 흩어졌다.


아이의 상태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좋아졌다. 기도삽관을 떼고 양압기의 도움을 받다가 자가호흡이 가능해졌다. 위관 없이 젖병으로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우유의 양과 몸무게가 늘었다. 30분의 면회 시간, 나는 아이가 작은 배를 할딱이며 있는 힘껏 숨을 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낮이면 아이의 몸속에 꿈틀대는 생명의 힘에 대해 생각했지만,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3시간마다 유축기를 돌려 젖을 짜냈다. 적막한 밤, 위잉위잉 유축기 돌아가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모유저장팩에 날짜와 시간을 기입할 때면, 하루가 가고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안도였다.



남편과 공유하지 못한 것


신생아중환자실 면회는 아이의 부모만 가능했다. 30분의 면회 시간,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아이의 동영상을 찍었다(아이의 병원은 핸드폰 반입과 촬영이 가능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머리를 맞대고 아이의 동영상을 돌려봤다.


그러나 남편과 내가 공유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죄책감이었다. 나는 ‘내가 임신 중에 더 조심했더라면, 병원을 좀더 일찍 찾아갔더라면, 라보파(자궁수축억제제) 맞는 것이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가능성을 반추하며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달랐다. 아이를 애달파하며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으나, 자신의 탓이라 여기지 않았다. 남편은 나의 죄책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만큼은, 남편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흘렀다.


'그래, 당신 몸으로 낳은 게 아니니까.' 그때는 엄마가 된 순간부터,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깊고도 체계적으로 여성(만)을 옭아매는지 알지 못했다.


...

어느새 아이의 출생예정일이 가까워졌다. 아이는 65일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추적 관찰을 요하는 여러 병명과 촘촘히 짜인 외래 스케쥴을 주렁주렁 매단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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