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 생존자의 수기3] 아이의 발달을 자극해야 한다는 과제 앞에서
아이는 65일만에 신생아중환자실을 퇴원했다.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 기관지폐이형성증, 뇌실주위 음영증가, 심방중격결손... 여러 진단명이 붙은 채로. 입원 기간 큰 이벤트는 없었고 이 정도 진단명은 이른둥이에게 흔했다. 그러나 장기들이 미숙한 채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 과에서 추적 관찰을 요했다. 촘촘히 짜인 외래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활의학과 외래 날. 교수는 차트를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엄마는 왜 조산을 했을까?”
그 말이 맘 속 어느 부분을 사납게 밀치며 다가왔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산부인과 교수도 조산 원인은 알 수 없는 거라고 했는데...’ 뒷말을 삼켰다.
심장초음파검사를 위해 찾아간 심장센터. 대기석에 앉은 할머니가 아이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저 핏덩이가 어쩌다 이런 데 왔을꼬?"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너는 아이도 제대로 낳지 못한 여자야', '네가 아이를 일찍 낳아서 아이가 이렇게 고생하잖아' 듣지 않은 말들이 어울렁거렸다.
아기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용사였다. 자랑스러운 마음에 종종 아이의 주사바늘 자국이 가득한 손등을 쓸었다. 때로는 낯설었고 더 자주 두려웠다. 아이는 용을 쓰며 괴상한 소리를 자주 냈다. 그 소리에 불안해하다가도, 잠잠해진 후엔 아이가 숨을 잘 쉬나 코에 손을 갖다대었다.
당시 꾼 꿈 하나. 나는 아이를 안고 집앞 산책을 나갔다. 아니, '안고'는 적합한 단어가 아니었다. 병아리만한 아이는 내 두손 위에 살포시 ‘얹어져’ 있었다. 찬 공기를 많이 쐬어서일까. 아이의 눈 흰 자가 검은 색으로 변했다. 몸도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주위에 도움을 청했는데,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땀에 젖어 눈을 떴을 때, 아이는 내 옆에서 용을 쓰며 자고 있었다.
아이는 잘 클 수 있을까. 뇌, 폐, 심장, 눈에 붙은 진단명들, '이른둥이는 뇌성마비가 많아서 지켜봐야 해요' 라던 재활의학과 교수의 말을 넘을 수 있을까. 나도 모든 것이 처음인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엄마니까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말했지만, 아이를 책임지는 유일한 존재가 나라는 사실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미숙아망막증 검사 이상 없음, 청력검사 이상 없음, 피검사 이상 없음... 여러 검사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으며 외래가 차츰 줄었다.
판정이 쉽사리 내려지지 않는 검사가 있었다. 이른둥이는 발달장애 고위험군이라 정기적인 발달 검사를 받는다. 발달에 이상이 있는 경우 적절하게 개입하기 위해서다. 인지나 언어 발달은 두세돌, 집중력과 학업능력 발달은 네돌은 되어야 확인할 수 있으므로 발달 검사는 긴 싸움이 될 터였다.
발달 검사는 아이가 딸랑이를 잡는지, 뒤집기 자세가 어떤지에서, 블록을 연달아 몇 개 쌓을 수 있는지, 도구를 사용해 물건을 꺼낼 수 있는지 등으로 아이의 개월수에 따라 발전해갔다. 아이가 과제를 해내지 못하면 애가 탔고, 결과지를 든 교수가 침묵할 때면 온갖 시나리오를 그렸다. 수능 보는 기분이 이랬었나.
발달검사지 문항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미리 확인하고, 하지 못하는 것은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우리 블록 한번 쌓아볼까? 위로 하나, 둘, 셋... 아니 아니, 던지지 말고. 위로 위로. 아니 아니, 던지지 말랬지!!"
연습은 늘 실패로 끝났다.
‘어떻게 아이의 발달을 촉진할까, 아이의 개월수에 맞는 장난감을 사볼까’ 고민하며 검색창을 뒤지기도 했다. 인터넷 세상엔 대근육·소근육·인지 발달을 자극한다는 수많은 장난감이 ‘국민’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교구로 상호작용을 하는 ‘엄마표 놀이’도 넘쳐났다. 그 모든 정보들은 엄마가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 신경써서는 안된다고,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고 소리 높이고 있었다.
목표지향적, 의도적으로 아이의 발달을 자극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육아는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데? 나 안행복하면 우리 아이에게 안좋을텐데?’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악순환이었다.
발달장애 혹은 발달장애 고위험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물리치료,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인지치료, 놀이치료... 각종 치료를 시작하기도 하고, '엄마표 치료'를 위해 전문가들이 볼 법한 서적을 공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열심을 다하는 이유는, 과학의 힘을 빌려 아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의 책 『모성애의 발명』에 따르면, 의학과 심리학, 교육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육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의학은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던 장애도 치료하고 교정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심리학은 유아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시기에 지원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이의 발전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 보았다. 바야흐로 아이는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의 결함을 교정하고 소질을 계발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육아는 '양육자가 신중하게 도입하고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활동'(위의 책, 147쪽)이 되었다.
아이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면, 재활치료나 사교육을 더 받으면, 아이의 결함을 교정하거나 소질을 계발할 수 있다니. 동시에 양육자, 특히 엄마의 부담과 책임이 커지는 일이었다. 재활의학·소아정신의학·아동발달학 등의 관련 자료, 치료실 정보(결함 교정의 경우), 사교육 시장, 엄마표 영어(소질 계발의 경우) 등에 대해 공부하고 적용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생겼으니.
나 역시 발달장애 고위험군 아이를 키우며, 그 임무를 모른 체 하기는 힘들었다. 막중한 임무 앞에서 편안한 마음이기도 어려웠다.
'아이에게 다양한 발달 자극을 위해 노력하되, 불안해하지 말자'
내가 세웠던 목표는 '완벽하게 아름답되, 성형 티는 나지 않기', '열정적으로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기'처럼 어려운 미션이었다.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들이 계속됐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상담이라도 받아야겠어.'
난생 처음 상담센터를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