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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18. 2020

처음 만난 야생의 세계

[스위치 게임 리뷰]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집에 있는 스위치 타이틀은 10개가 넘는다. 그중에 오로지 나 혼자 하는 게임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젤다) 이다.

아내 취향에는 맞지 않고 아들에겐 너무 어렵다. 내가 게임할 때 아들이 기웃거리며 구경하기는 하지만 도전할 엄두는 못 낸다. 그래서 젤다는 우리 집에 있는 나만의 동굴이다. 오직 나에게만 펼쳐진 세계 속에서, 가정도 직장도 잊고 모험에만 몰입한다. 나의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야생의 세계다.




자유, 그리고 흥분


젤다를 시작하고 가장 놀란 것은 엄청나게 넓은 맵, 그리고 유저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였다. 젤다는 워낙 유명한 게임이라 달리 설명이 필요 없지만 이번 작품은 기존과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오픈월드' 형식을 채택한 것이다. 오픈월드는 높은 자유도를 기반으로 플레이의 제약이 거의 없는 게임을 말한다.


젤다를 하다 보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싶을 때가 있다.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갈 수 있는 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오로지 유저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런 것도 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은 웬만하면 다 된다. 눈에 보이는 산은 어디든 올라갈 수 있고, 물이 있다면 어디든 헤엄쳐갈 수 있다.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모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젤다의 세계다.


직장과 집, 매일 반복되는 삶의 루틴에 갇혀 살던 내게 젤다는 오아시스와 같았다. 게임 속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며 난 조용히 감탄사를 뱉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 앞에서 흥분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 젤다는 내 안에 잠든 야생의 숨결을 깨웠다.


https://youtu.be/CKYjsB0ZJ7I

젤다의 전설 트레일러 영상. 글의 내용이 영상에 다 담겨있다.




외로운 생존의 무게


나는 젤다를 100시간 정도 플레이하면서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이 흥미진진한 모험을 계속 즐기고 싶다는 마음과 어서 빨리 이 모험을 마무리 짓고 싶다는 마음이다.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난 모험도 좋지만 끊임없이 덤벼드는 적들과의 싸움,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이 때로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난 심신이 가장 안정적인 주말 오전 시간에 주로 플레이했다. 게임의 긴장감과 피로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젤다는 많은 자유를 허락하는 동시에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유저는 처음부터 최종 보스를 향해 달려갈 자유가 있지만 맷집과 실력이 없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뿐이다. 모험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캐릭터의 성장 방식이 다른 RPG 게임들과는 다르다. 보통은 몹을 잡으면서 경험치를 통해 레벨을 올리는데 젤다에는 캐릭터의 레벨 개념이 없다. 대신, 유저 자신의 실력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복되는 전투 속에서 유저 스스로 컨트롤 실력을 키우고 싸움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관건이다. 돈이나 아이템이 대신해줄 수 없는 과제다.


내가 제일 무서워 했던 라이넬


 나는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키워야 하는 이 야생의 세계가 종종 버겁게 느껴졌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과 보람도 좋았지만, 게임에서까지 생존을 위해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높은 자유도 덕분에 보스급 적들과 싸우거나, 적들의 수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면 얼른 도망쳐 다른 루트를 뚫었다. 유저들의 친절한 공략이 유튜브에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즐기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나 동물의 숲과 같은 게임은 ‘가벼운 즐거움’이 좋다. 힘든 부분들이 있어도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즐거움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젤다는 즐거운 기분과는 다르다. 광활한 세계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유저(링크)는 살아야 하는 이유, 싸워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며 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흥분과 긴장, 쾌감과 공포, 고독과 기쁨 등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게임을 통해 경험한다. 젤다는 '또 하나의 삶'이다.


이번 젤다에 대한 유저들의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나는 특히 이 말에 공감했다.


이제 다른 게임을 할 수가 없다.
다 시시해 보이기 때문에.



젤다가 최고의 게임으로 인정받는 것은 단지 게임성 때문만은 아니다. 명쾌하게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젤다만의 숭고한 매력이 있다. 삶에 대한 원초적인 감각을 깨우며, 압도적 스케일의 낯선 세계를 통해 몸 깊숙이 새겨진 야생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다른 게임이 시시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게임 엔딩을 본 후, 젤다에는 이제 손을 대지 않는다.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2’ 개발 소식을 들었다. 곧 발매될 거라는 소문까지. 티저 영상을 보는데 아- 씨. 마음이 간지럽다. 다시 동굴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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