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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ug 11. 2020

욕망의 숲 VS 힐링의 숲, 당신의 선택은?

[스위치 게임 리뷰] 모여봐요 동물의 숲

스위치를 구입한 후 ‘동물의 숲’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 플레이해 본 적도 없고,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슈퍼 마리오처럼 목표가 명확하고 점차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게임이 내게 잘 맞았다. 그러다 ‘동숲 대란’을 뉴스로 접하면서 조금 관심이 생겼다. 유튜브로 동숲 유저들이 직접 꾸민 집과 섬을 보며 ‘이런 것도 가능해?’ 싶었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얼마 후 ‘당근 요정’인 아내는 가격 폭등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근마켓에서 정가보다 저렴하게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구했다.




시작은 힐링 게임


시작은 아들과 아빠의 따뜻한 힐링 게임이었다. 캐릭터를 만들고 앞으로 살아갈 섬을 선택하고 섬 이름도 지었다. 귀여운 너구리 캐릭터의 안내를 따라 무인도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아들과 나는 텐트를 치고 잡초를 뽑고 과일도 따고 곤충도 잡고 낚시도 하면서 평화로운 섬 생활을 즐겼다. 가끔씩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메모도 남기고, 아들이 주고 간 선물을 설레는 마음으로 풀어보기도 했다.


다른 게임들처럼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재미와 흥분은 없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받는 치열한 경쟁도 물리쳐야 할 적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소일거리를 하며 수입을 벌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직접 만들거나 구입하며, 섬에 사는 이웃들과 소통하는 평화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게임 장르가 ‘커뮤니케이션 게임’이라고 나오는데, 게임을 할수록 공감이 되었다. 작은 섬에서 가족, 그리고 동물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소통하며 삶을 나누는 은근한 재미가 있다.


아들의 동숲. 이 텐트가 집으로 바뀔 때 얼마나 기뻐했던지.

 


아내가 오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평화로운 섬의 분위기가 바뀐 건 아내가 섬에 이사 오면서부터다. 내가 동물의 숲을 시작한 후로 아내에게 하던 말이 있다.

“이거 자기가 진짜 좋아할 게임이야~”

예쁘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데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아내에게 동물의 숲은 현실에서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채워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게임을 시작한 후에도 한동안은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잡초는 언제까지 뽑아야 돼? 계속 이렇게 일만 하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아내는 화면 속으로 빠져들 기세였다.

“동숲 해?”
“응, 나 대출 다 갚고 방 하나 늘렸어~”

현재 아내의 집, 2층과 지하실까지 모두 갖추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주택 대출을 갚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곤충을 잡고 과일을 따고 낚시를 했다. 왜 게임에서까지 일을 해야 하냐고 귀찮아하던 아내는 더 넓은 집을 가지기 위해 고단한 노동에 시간을 바쳤다. 한 주, 두 주가 지나면서 아내의 집은 빠르게 확장되었고 집 안에는 처음 보는 가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동물의 숲은 더 이상 힐링 게임이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고된 노동에 지친 아내는 이른바 ‘무트코인’에 손을 댔다. 일요일마다 섬에 찾아오는 무 장사에게 무를 구입한 후, 섬의 상점에서 무를 비싸게 매입하는 날 (매입 가격이 매일 달라진다) 무를 팔아 이윤을 남기는 행위다. 하지만 우리 섬의 상점에서는 비싸게 매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참다못한 아내는 무를 비싸게 매입하는 다른 유저들의 섬에 방문하여 무를 팔고 왔다. 90원에 사서 500원에 파는 방식으로 대량의 무를 매매하여 엄청난 부를 쌓았다. 심지어 게임기의 시간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타임슬립’을 통해 단시간에 ‘무트코인’ 거래를 대량 성사시킴으로써 아내는 경제적 자유를 얻기에 이르렀다.

일요일마다 찾아왔던 '무파니'


그 돈으로 마음껏 집을 늘리고 각종 소품과 가구를 사들였다. 집은 점점 더 고급스럽게 꾸며졌고 집뿐만 아니라 섬에 예쁜 꽃밭과 호젓한 정원 등을 정성 들여 만들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아내는 무엇에 홀린 듯 동숲에 빠져들었다. 동물의 숲이 가진 마력은 실로 대단했다. 결국 아내는 섬 크리에이터 자격까지 얻어, 우리 섬을 본인 취향에 맞게 모두 꾸민 후에야 겨우 게임을 놓을 수 있었다.



아내를 사로잡은 욕망의 숲


동물의 숲에서는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현실에서 가지고 싶은 모든 물건이 존재하며 상상하는 인테리어를 제한 없이 구현할 수 있다. 내가 꿈꾸는 집, 내가 꿈꾸는 마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현실에서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이 게임에서는 근사하게 이루어진다. 동물의 숲은 아내에게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를 맛보게 해 주었다.

아내가 꾸민 섬 이 곳 저 곳

동물의 숲은 자본주의에 기반한 현실을 꼭 닮기도 했다. 집을 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지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렵과 채집 노동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 이런 시스템이 (자본주의 현실이 그렇듯)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과 성취감을 주는 요소가 된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대출을 다 갚을 때의 그 기쁨이란!

동숲 유저들에게 중요하다는 ‘항공샷’

이렇게 꿈을 이루어주는 판타지 세계와 보람과 성취감을 주는 경제 시스템이 맞물려, 동물의 숲은 게임 유저들이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욕망의 숲이 되었다. 동숲 시리즈가 2001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지난 20년간의 노하우가 집약된 버전이리라.


커뮤니티에서 맛보는 힐링의 숲


그렇다고 동숲이 욕망의 소굴인 것만은 아니다. 내가 놀란 것 중 하나는 유저 커뮤니티다. 동숲 유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물건들을 사고팔며, 상점의 무값이 많이 오르면 자신의 섬을 개방하기도 한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거래하고 때로는 무료로 선의를 베푸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자본주의를 닮았지만 경쟁과 낙오가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커뮤니티 자체가 평화롭고 공정하며 서로를 환대한다.


언제나 반가운 우리 이웃들


게임 속 마을 커뮤니티는 말할 것도 없다. 동물 이웃들과 서로 안부를 묻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이웃의 따뜻함을 느낀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현실의 치열하고 불공정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는 우리들에게 이처럼 조건 없이 이웃을 환대하는 커뮤니티는 그 자체가 힐링의 이유다.

 


선택은 우리의 몫


아내의 뜨거웠던 두 달이 지나고 이제는 가족 모두가 여유롭게 동물의 숲을 즐기고 있다. 특히 이번 달엔 일요일 저녁마다 불꽃놀이 축제가 열려서 함께 게임에 접속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살랑살랑한 음악, 어스름한 밤하늘, 그 위로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 즐거운 이웃들과의 대화. 그냥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난 일요일 저녁, 아내가 말했다.

“동숲 하면서 나 처음으로 힐링되는 것 같아”



욕망은 우리를 뜨겁게 하지만 뜨거운 것은 식기 마련이다. 다시 일상의 평안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동물의 숲은 때로는 욕망의 숲으로, 때로는 힐링의 숲으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선물한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얼굴을 다르게 내밀뿐이다. 어떤 숲에서 살아갈지는 온전히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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