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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May 24. 2018

즐거워야 진짜 공부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

진짜 공부


학창 시절 공부는 내게 전부였다. 공부 말고는 잘 하는 것도, 인정받을 만한 것도 없었다. 공부 자체가 즐거운 건 아니었지만, 좋은 성적을 받고 등수를 올리면 자존감도 높아졌다. 시험이 존재를 점수 매겼다. 공부는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서는 ‘진짜' 공부가 중요하다고 한다. 시켜서 하는 공부, 경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공부다. 시험이나 자격증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세계와 인간에 대한 배움 그 자체가 목적인 공부가 '진짜'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 취업을 위한 공부, 재테크를 위한 공부... 모두 경쟁의 수단으로서 공부일 뿐이다. 그렇게 '가짜' 공부에 길들여져 왔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힘들고 부담스럽고 지겨운 것. 보통 우리가 가진 공부에 대한 이미지다. 진짜 공부는 그 반대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즐거움이다. 인생에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것이다.


책을 통해서 공부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진짜 공부’였음을 알았다. 재밌고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에 공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 당신에게도 그 즐거웠던 공부의 기억이 있다. 공부의 즐거움은 모든 삶에 허락된 선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공부는 그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부는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져 낯설게 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보는 시각에 문제는 없는지,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은 없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이 공부의 본질이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 공부들은 우리의 지식 체계를 풍요롭게 해 주고 생각하는 법을 길러 주며 더 나아가서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까지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스무 살, 내 가슴을 뜨겁게 했던


스포츠나 드라마 같은 것 말고, 내가 가진 가능성 때문에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은 언제인가.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열리고, 내 앞에 멋진 가능성들이 놓여 있을 때,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공부로부터 그 경험이 시작되기도 한다. 공부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엔 정치나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른들 의견에 순종적이었다. 선거 때마다 난 우리 편이 있다고 생각했고 선거방송에서 지도가 파란색으로 덮이길 바랬다. (현 자유한국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민주자유당 색이 파란색이었다.)


대학에 가면서 비로소 생각의 틀이 깨졌다. 선배들로부터, 책으로부터, 그리고 거리에서부터 자연스레 공부를 시작했다. 신입생으로 처음 참여했던 노동절을 아직 잊지 못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그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삶을 바꾼 경험들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역사를 배우면서, 세상의 진실에 조금은 눈이 뜨였다. 역사가 보여주듯 현실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며, 시민들의 역동적인 정치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더 행복하고 멋진 세상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은 스무 살의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내가 마주한 더 넓어진 세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스무 살, 내 진짜 공부의 기억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교육자이자 시인인 사이토 기하쿠는 '공부의 기본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계속 깨뜨려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공부란 내가 맞다고 의심 없이 믿어 온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완벽하다 믿었던 나의 지식 체계에 빈 구멍이 많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에는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피곤한 과정이며, 그동안 쌓아온 지식을 폐기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과 마주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공부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며 그때 비로소 머리와 내면이 동시에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서른, 신앙과 공부 사이


첫 직장에 지원했던 이유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건강한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마음은 사라졌다. 돈이 되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거나, 때로는 고객에게 트릭을 써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책임이 커질수록 매출에 집착하게 되었다. 일에 대한 회의가 찾아왔다. 사람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다를 테지만, 내게는 '삶의 의미'가 중요했다. 의미가 없으면 재미도 없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었고, 그 길을 신에게 묻기로 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긴 시간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았다. 그러나 내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 방향을 답해줄 수 있는 존재는 그분밖에 없었다. 성경으로, 책으로, 설교를 들으며 궁금증을 해소하려 했다. 지적인 작업으로 그치지 않았다. 예배와 기도라는 영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나의 미션이라고 믿어졌다. 나의 천성과 성품을 고려하였을 때 가당찮은 일이었지만, 그분이 내게 원하는 삶임은 틀림없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주어진 삶을 당연스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내겐 신앙이고 진짜 공부다. 세상의 그 무엇도 알려줄 수 없는 삶의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인생의 정답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공부는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중략) 공부하는 자세로 일상에 질문을 던지고, 공부를 통해 얻은 새로운 자극을 내 삶에 녹이는 '공부하는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른다섯,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비영리단체에서 5년을 일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느라 시간은 빨리 흘렀다.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포스터를 보았다. 모 재단에서 비영리 리더를 대상으로 6개월간의 교육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경영전략에서부터, 조직문화, 마케팅, 리더십, 해외기관 연수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통해 비영리 리더의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매력적이었다.


지원서를 쓰면서 지난 5년을 돌아봤다. 사회문화적인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 조직은 이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조직이 가진 미션은 분명했지만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부족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맡겨진 역할을 감당할 역량이 충분치 못했다. 조직의 존속과 성장을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성장하고 변화해야 했다.


10년만에  다시 학생의 자리로 돌아간 그때, 하루하루의 수업이 즐거웠다. 교수님들이 가진 깊은 통찰로부터, 동기들과의 협업으로부터, 국내외 기관과 기업 방문으로부터 배우고 깨닫는 시간들이 소중했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과제를 하면서도 불평이 나오지 않았다. 공부가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던가, 미처 몰랐다. 또한 새로운 지식과 통찰을 얻는 것만으로도 자신감과 자존감이 올라갔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은 기분이었다.


또 다른 소득 중 하나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긴 시간 책을 읽지 않았다.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 만족했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교수님들이 추천해준 책에는 혼자 보기 아까운 지혜와 지식들이 가득했다. 과거의 책 읽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읽어야 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하고 궁금한 주제의 책을 찾아 읽고 책 속에서 배움을 얻는 그 과정이 재밌고 즐겁다. 이것이 진짜 공부구나 싶었다.


누구나 겪는 이 위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이 정도에서 적당히 안주하고 싶을 때, 이만큼만 유지해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퇴보할 것인지 아니면 한 단계 도약하여 성장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공부는 자신의 내면에 나무를 한 그루 심는 것과 같다. 어떤 학자가 쓴 책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세계관을 공부하면, 나의 내면에는 그 학자의 나무가 옮겨 심어진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나무의 종류도 각양각색일 것이고 숲의 면적도 넓을 것이다. 반대로 공부를 게을리했다면 숲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면이 황량할 것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내 삶에 있었던 진짜 공부의 기억을 찾아 보았다. 그 시기의 내 삶은 충만했다. '공부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고 말할 만하다. 저자는 우리가 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공부가 우리 인생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 평생 공부를 위한 지침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공부 욕구를 자극하는 책이다. 그가 말하는 ‘공부하는 이유’에 충분히 공감한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지겨운 공부는 잊어도 좋다.  이제부터는 나의 가슴을 뛰게하고, 나를 성장하게 하며, 내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도록 돕는 그런 공부를 시작하길 권한다. 왜 허튼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직장생활, 인간관계, 육아 같은 고민거리의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피아노, 기타 같은 악기나 춤, 스포츠 등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취미생활로 시작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공감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배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의미가 있고 즐거워야 오래 할 수 있다. 오래하면 실력이 늘고, 실력이 늘면 자존감도 즐거움도 더 커진다. 삶이 충만해진다. 공부가 가져오는 즐거움의 선순환을 모두가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한국 사회도 개인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짜’ 공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후회 없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든, 수많은 역경 속에서 힘들게 살았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의미와 남은 삶의 방향을 되짚어 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중략) 나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배운다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의 기쁨은 삶을 다시 충만하게 채워 주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배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의 눈빛은 항상 반짝이고, 허무함이나 고독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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