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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Nov 29. 2020

플랫폼 노동에서 불안한 미래를 읽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 김하영

배달료 2,000원.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은 문구죠. 음식 배달이 공짜던 시절은 갔습니다. 모든 음식점이 배달을 하고 이동거리에 따라 배달료를 받고 있어요. '배달대행'이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하면서부터입니다. 음식뿐만이 아닙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온갖 생필품들이 '로켓'처럼 우리 집에 배달돼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배달'은 우리 일상을 유지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직업이 되었죠.


배민 커넥트, 쿠팡 플렉스, 카카오 대리기사 등 이른바 배달 플랫폼 노동은 '원하는 시간에 짧게 일하고 짭짤한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로 홍보되지만, 그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요즘은 배달만 열심히 해도 월 4-500만 원씩 번다는 얘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소개하는 책 <뭐든 다 배달합니다>는 그 의문을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줍니다. 기자 출신 저자는 쿠팡, 배민, 카카오의 플랫폼 노동을 체험한 기록과 함께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적인 노동에 대한 '기자다운'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담았습니다.    



플랫폼 노동 200일의 기록


저자가 직접 경험한 플랫폼 노동은 쿠팡 물류센터, 배민 커넥트, 카카오 대리기사입니다. 첫 출근의 설레고 두려운 경험에서부터 일잘러가 되기 위한 노하우, 일의 기쁨과 슬픔을 사실적이며 담담하게 그려내요. 아마도 이 일을 해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훌륭한 가이드북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몸이 부실한 저는 엄두도 못 낼 일들이지만...)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에요. 최근 언론은 택배와 배달 노동자들의 과로, 사고사 소식을 자주 전했습니다. 플랫폼 노동 현장의 그림자들이죠. 책에서는 트렌디한 이미지의 플랫폼 노동 이면에 깔려있는 노동 현장의 치열함과 고단함을 함께 보여줍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쓰였던 내용 중 하나는 플랫폼 노동자에겐 '생각'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물류센터든 배달이든 스마트폰이나 PDA 단말기가 알려주는 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이 노동 현장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인간은 기계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손발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임금이 높은 것도 아니에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낮은 숙련도의 노동이기 때문에 대부분 최저 임금 수준입니다. 일하는 만큼 번다고 하지만 수많은 경쟁자들이 유입되는 '인력 플랫폼'에서 그마저도 쉽지 않고요. 도로의 무법자처럼 보이는 배달 오토바이들도 결국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한 몸부림이죠.


출처: 안전저널


저자는 노동의 양극화 문제를 지적합니다. 쿠팡의 개발자 연봉은 1억이 넘지만 쿠팡 물류센터의 계약 직원은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플랫폼을 설계하는 노동자(회사)와 플랫폼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회사)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커집니다. 생각이 필요 없는 직업은 결국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고요. 이러한 심각한 양극화 문제는 결국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노동 환경 변화에 따른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자신의 아이디어도 함께 나눕니다.



노동, 불안한 미래

   

<뭐든 다 배달합니다>는 독자에게 커다란 질문 하나를 배달해 놓고 돌아갑니다. 내 직장의 미래는 어떨까? 내 일자리는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책의 말미로 갈수록, 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거든요. '경제적 자유'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보통의 회사원은 늘 불안합니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연대는 멀게만 느껴지고요.


저자는 이 책을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보도자료'라고 소개합니다. 보도자료는 많은 기자들이 보도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작성된 기사죠. 결국 이 책의 소명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노동의 미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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