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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03. 2020

두려움이 만든 괴물, 혐오

<타인에 대한 연민: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누스바움

분노, 혐오, 시기


우리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대표적인 감정들입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분노하고, 성적 취향이나 국적이 다른 이들에게 혐오를 드러내죠. 부동산이나 주식의 오르내림은 인간의 시기심을 자극하고요. 이 감정들은 때로 극단적인 보복과 폭력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 감정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두려움이 혐오를 만든다


<타인에 대한 연민: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 세 가지 감정의 원인으로 ‘두려움’을 지목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입니다. 한국어 제목을 한참 잘못 지었다고 생각...) 사회경제적 위기로 인해 미래의 불확실성이 클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죠.


지금 미국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생활수준 하락, 실업, 건강보험 부재 가능성, 열심히 일하면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고 아이들의 삶은 더 나아질 거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로 인한 두려움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


두려움은 위험을 피하게 하는 본능이지만, 피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는 않아요.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보다 즉각적이고 쉬운 해결방법을 찾게 됩니다. 나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배려나 보호에는 무관심하게 되고요. 그래서 소수자에 대한 분노와 비난, 혐오가 쉽게 확산되죠.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인이 감염병의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서구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극성을 부렸습니다. 아시아인들이 폭행당하는 사건들도 일어났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도 두려움이 끼친 영향이 큽니다. 기득 권력이었던 백인 남성들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불안해지자 타인종, 이주민, 여성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통해 세력을 키웠기 때문이지요.


두려움은 사실 지독한 자기애적 감정이다. 어떤 형태로 뿌리내리든 타인에 관한 모든 생각을 몰아낸다. 유아의 두려움은 전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란 후에도 두려움은 타인에 대한 걱정을 몰아내고 자신만 생각하는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우리를 되돌린다.


출처: KBS News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성찰을 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손쉬운 원인을 지목해 배제하고 제거함으로써 가짜 안정을 찾는 것이에요. 저자는 오래된 전래 동화들에서도 이러한 인간의 취약한 본성을 발견합니다.


음식을 찾아 숲을 헤매는 '헨젤과 그레텔'의 문제는 부모가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는 상황과 굶주림이다. 하지만 동화는 이 현실적인 문제를 숲에 살면서 아이들을 생강 쿠키로 만드는 비현실적인 마녀의 탓으로 돌린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 희망


저자는 두려움이 만드는 분노, 혐오, 시기의 감정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원인을 밝히고 문제점과 오류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하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차이의 공존'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도덕적 관심의 표면 아래 도사리면서 민주주의의 안정을 위협한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상호 호혜를 받아들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저자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민주적이며 건강한 시민을 양성하는 방안과 사회 구조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대안은 (그녀가 철학자이기 때문인지...) 보다 철학적입니다. 바로, 두려움보다 '희망'에 집중하자는 제안인데요.


나는 희망이 좋은 세상에 대한 비전과 이를 위한 행동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희망과 관련된 행동은 간혹 두려움으로 인한 행동과 비슷하다. 나쁜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은 좋은 가능성을 불러오는 것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위험에 대한 건강하고 균형 잡힌 두려움은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회피 전략을 촉발한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두려움에 가득 찬 환자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수 있다. 희망적인 환자는 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자세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희망 그 자체로도 효과가 있다.


희망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태도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중요한 상황 속에서만 희망을 말합니다. 일어날 가능성이 큰 일에 대해서는 '희망'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우리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희망'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불치병이 나을 수 있기를 '희망'하지요. 희망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것입니다.


저자는 마틴 루터 킹과 넬슨 만델라의 사례를 자주 인용합니다.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여 적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바탕으로 변화의 행동을 촉구하는 '현실적인 희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희망에서부터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이 나올 수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 사회엔 포기와 절망, 냉소만이 남겠지요.


마틴 루터 킹
희망은 선택이고 현실적인 습관이다. 결혼이든 직업이든 인간관계든 인간이 겪는 모든 상황에는 언제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있다.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우리의 감정적 상태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미래가 불안해서 두려움이 엄습할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분노와 혐오, 시기의 감정이 나를 덮칠 때 어떻게 대처하고 계십니까? 이 책은 여러분의 선택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볼 기회를 줍니다. 더 나은 미래는 더 나은 선택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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