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Oct 25. 2020

돌봄이 일상을 지킨다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도하타 가이토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는 일본의 한 임상심리학자가 정신과 돌봄 시설에서 근무한 경험을 통해 ‘일상과 의존, 돌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시설을 찾아오는 정신과 환자들은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죠. 환자는 이들에게 의존함으로써 그저 '가만히 있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있기' 위해서는 그곳에 익숙해지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우리는 사실 누군가에게 몸을 맡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의존을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의존하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주간 돌봄 시설로 찾아온다.



'가만히 있기' 힘든 사회


사실 돌봄과 의존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인간이 일상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갓난아기는 24시간 곁에서 돌보지 않으면 생존이 위험합니다. 유아나 초등학생들도 돌봐줄 어른이 없으면 한 끼 식사도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면 돌봄이 필요 없을까요? 육아를 하는 배우자를 돌보고, 직장에서 녹초가 된 맞벌이 부부가 서로를 돌보지 않는다면 어른들의 일상도 위태롭습니다. 우울증, 번아웃 등 일상을 할퀴는 증상들이 나타나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일상을 지키는 일, 사람을 돌보는 일에 무관심합니다. 생산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 조직을 생각해 보세요. 직원들의 일상을 돌보는 회사? 찾기 어려울 겁니다. 더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가 있다면 그곳은 더 많은 생산성을 요구할 것이며, 돌봄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이 자본의 생리니까요.


저자가 일했던 시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시설보다 더 높은 임금을 제공했지만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납니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세보다 높은 임금과 맞바꾸어 우리가 제공한 것은 자신이 돌봄 받을 권리였다. 사용자로서는 어차피 다음 사람이 올 테니 굳이 직원들의 '있기'를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있기'가 가벼이 여겨진 것이다.



정신과 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봄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가 이윤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진짜 돌봄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돌봄의 목적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맺고 '가만히 있는' 일상을 지키는 것인데, 기업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본의 원리 앞에서 '가만히 있기'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중략) 사회에 복귀하지도, 일을 하지도, 무언가 도움을 주지도 못하지만 '있는' 것. 그런 것이 '가만히 있기'다. 사회 복귀와 취직 등에 얽매이지 않는 '가만히 있기'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자본의 원리와 사이가 매우 나쁠 수밖에 없다.



돌봄의 가치


돌봄은 이윤이 아닌, 공동체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일상의 돌봄 노동은 사랑하는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과 헌신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비생산적인 일일지 몰라도,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노동이지요. 정신과 환자들이 전문가들의 돌봄에 의존하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돌봄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돌봄의 가치는 공동체의 안정과 유지에서 찾아야지, 생산과 효율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화가의 가치를 축구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미다스 왕처럼 엉뚱한 곳에서 금을 찾아서는 안 되었다. '가만히 있는 것'에 시장 가치를 원해서는 안 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두 가지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선을 그리는 시간'으로서 변화와 성장의 시간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원을 그리는 시간'으로서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겐 변화와 성장만큼 일상의 안정도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도 일상과 돌봄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커지는 만큼, 일상의 불안도 커져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우리는 뜨겁게 살아가지만 동시에 차갑게도 살고 있다. 변화를 목표로 할 때도 있지만, 변치 않으려 조심하는 때도 있다. 다들 매일매일 일상이 유지되도록 무척 신경을 쓰지 않는가. 직장 상사가 개혁을 부르짖으면 '제발 그러지 마.'라고 생각하지 않나. (중략) 우리는 '인생'이 뜨겁길 원하지만, '생활'은 차가운 게 좋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안정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일들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오늘 하루,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의존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작은 도움으로 누군가를 돌봐 준 경험이 있지 않나요? 그렇게 우리는 매일 의존하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 돌봄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사는 삶은 의존하는 삶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