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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an 13. 2022

꼭 용서해야만 하나요?

<용서에 대하여> 강남순


용서의 문제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 학교... 타인과 밀접하게 지내는 모든 환경에서 분노와 용서의 사건은 피할 수 없습니다. 결혼생활 10년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용서를 구했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용서가 없었다면 제 삶은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강남순 교수가 쓴 <용서에 대하여>는 용서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기회를 선물해줍니다. 왜 용서가 중요하고 필요한지, 용서의 조건은 무엇인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 것인지. 다양한 관점에서 용서의 문제를 바라보고 우리 삶에 적용하거나 사회적 이슈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출처: 교보문고



용서는 불완전한 공존의 산물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악한 성품과 착한 성품을 함께 가지고 있고, 이성적이지만 감정적이며, 선입견과 편견으로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의 불완전함은 때로 타인에게 폭력이 되고 상처가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상처와 분노가 일상적인 이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나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공동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기도 해요.


타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성적·언어적·정서적·신체적·경제적·종교적 폭력 등 다양한 양태로 타자와 상처를 주고받는 정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용서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용서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용서에도 조건이 필요합니다. 폭력을 가하거나 상처를 준 가해자의 행동을 묵인하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가해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가해자 스스로 자신의 행위가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과정, 가해 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프로세스와 거의 일치하네요...) 용서라는 이름으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공동체의 정치적 올바름을 구현하는 것이 용서의 목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출처: pixabay.com


피해자 역시 용서를 통해 삶의 방향을 미래로 향해야 합니다. 과거의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거죠. 가해자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반성과 성찰의 태도를 보이는 가해자의 변화 가능성을 긍정하는 태도가 용서를 완성시킵니다. 서로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관계로 전환되는 순간이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고정된 존재로서의 인간은 한 명도 없다. 즉 인간은 수없는 한계와 단점, 악한 품성을 지닌 존재인 동시에 선한 의지를 실행함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에 그가 범한 잘못된 ‘행위(죄)’에 ‘행위자(죄인)’를 절대적으로 밀착해 ‘악한 사람’이라는 표지를 영구화하고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이상과 현실의 긴장 속에서


하지만 현실에서의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분노는 쉽게 삭혀지지 않고, 가해자의 반성과 성찰은 드물죠. 어쩌면 진짜 용서는 ‘이상(윤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잘못을 덮은 채 넘어 가는 경우도 있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속편할 때도 있죠. ‘현실(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감이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윤리는 언제나 ‘아직 오지 않은’ 불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정치가 ‘끊임없이 참고’해야 하는 저편에 있다. 이 ‘윤리’가 보여주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정치’는 언제나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적용 범주를 확장해야 한다. 도달할 수 없지만, 도달해야 하는 지점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거리 좁히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의 정치’와 ‘용서의 윤리’는 지속적 긴장 속에서 직선적이지 않은 나선형적 관계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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