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이 능력이다> 사이토 다카시
사회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대학시절부터 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낯선 동기들과 멀게만 느껴지는 선배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늘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누군가 내게 말 걸어주길 기다렸지만, 먼저 나서지는 않았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일단 잡담은 쓸모없는 일이라 여겼다. 아무런 목적도, 소득도 없는 대화에 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 '용건만 간단히' 대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디서든 관계 속에 녹아드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확히 기간을 측정해본 것은 아니지만, 한 조직 또는 공동체 안에서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데는 보통 6개월 정도가 소요되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않았고, 누구나 편히 접근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친구도 소수의 몇 명만 만났고, 직장에서도 팀을 벗어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한 두명이 중요한 것이지, 굳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관계가 아닌 실력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면 되고,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면 된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문제들이 '관계'에 달려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많은 업무는 타 부서 또는 타 업체와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협업을 할 때 한 두 마디라도 자주 대화를 나눈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가 업무 관련 이야기를 꺼내기에 편안하고 부드럽다. 요청을 받는 입장에서도 관계가 있는 쪽에 더 마음이 쓰이게 마련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작은 규모의 학생회를 맡은 적이 있다. 난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준비만 잘 하면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관계'였다. 기획도 중요하지만, 학생회와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으면 찾는 사람이 적다. 별것 아닌 프로그램인 것 같아도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친밀하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수 많은 맛집 소개글이 있지만, 친구가 추천하는 맛집을 더 신뢰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관계의 친밀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느날 갑자기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건네는 한 마디 말, 잡담에서부터 시작한다. 편안한 잡담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관계는 부드럽고 친밀해진다.
잡담을 주고받음으로써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람이 그 이상의 존재가 된다. 상대에 대한 안도감과 신뢰감마저 느껴진다.
잡담은 당신이 타인에게 신뢰와 믿음을 줌으로써 사회성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아가 좋은 관계나 인연으로 발전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사 업무에서 큰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다.
20대 후반, 늦깎이 연애를 통해 '잡담'을 배웠다. 여자친구는 말이 없는 내 성격을 무척 답답해 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나면서도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남자, 싫을만 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는 나 역시 답답했다. 도대체 수 많은 커플들은 무슨 말을 하면서 데이트하는 것일까?
난 대화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비록 쓸데없는 잡담이라도 잡담을 나누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관심도 없는 날씨나 뉴스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실 관심이 있는 건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다. 상대방과 더 가까워지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바로 '잡담'인 것이다. 대화의 내용은 부차적일 뿐이다. 여자친구가 때때로 화를 냈던 이유도 이해가 된다. 잡담의 부재는 곧, 친밀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잡담이란 대화를 이용하여 그곳의 분위기를 조성해내는 기술이다. 따라서 잡담에 능한 사람이란, 화술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시간을 잘 때우는 사람’이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요컨대 대화라기보다 ‘사람 사귐’에 가깝다.
여자친구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시작했다. 데이트하러 가는 길에 하루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중에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대화 소재를 고르고 정리했다. 처음엔 이야깃거리가 될만하다 싶은 걸 골랐는데, 나중엔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자친구와 대화가 조금 더 쉬워졌다. ‘아, 이런 것까지 얘기할 수 있는 거구나’ 시작은 시덥잖아도 어느새 이야기는 삶의 깊은 부분까지 도착해 있다. 때로는 대화의 내용보다 행위 자체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회사 생활 속에서도 '잡담'을 배웠다. 동료들과 티타임도 거의 가지지 않았던 나. 하지만 점심 시간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부하 직원일 때는 부담감이 없었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식사 시간의 정적을 매꿔야만 하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 소재를 머리 속으로 궁리하는 훈련을 자연스레 겪었다. 외부 업체와의 미팅이 잦아질수록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도 어색하지 않았다. 조직 안과 조직 밖, 모두 잡담의 기술이 없이는 순조롭지가 않다.
잡담의 기술은 사회생활을 부드럽게 만들어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사회 생활 역시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통해 잡담하는 능력만 키워도 큰 소득(?)이리라.
일찍이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예의인 시절이 있었다. 관심 있는 상대의 취미를 알아내어 화제로 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요즘은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성가셔 하는 풍조가 강하다. 하지만 당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대수롭지 않은 잡담을 주고받은 인상으로 판단된다. 다시 말해, 젊은 사람이야말로 이런 대수롭지 않은 잡담을 어떻게 주고받느냐로 그 능력이 판가름 나는 것이다.
회사 점심 시간. 동료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줄 알면서도 자식 얘기를 꺼내는 상사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보는 상사도 실은 나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다는 것, 이제는 안다. 상사는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뿐이다. 이야기의 주제가 목적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관계가 목적이다. 대화하는 '행위'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대화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좋은 관계를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비록 그 진심이 전달되지는 않았을 지라도.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은 좋은 관계이다. 좋은 가족, 친구, 동료 관계가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 관계는 누군가의 노력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 쓸데없어 보이는 잡담이라도 내가 건네는 한마디 말로부터 관계는 출발한다. 잡담의 분량이 쌓여갈수록 친밀함도 쌓인다. 잡담은 고민으로, 고민은 삶의 깊은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평소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고민을 얘기하라고 하면 대화가 이어질까.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이다. 잡담은 좋은 관계의 시작이자, 기초이다.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우선은 잡담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대로 누군가 내게 잡담을 건넨다는 건, 나와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의미이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저 가볍게 대화를 나눌 정도의 관계일 것이다. 혹은 못견딜 정도로 어색한 공기를 바꾸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잡담을 주고 받는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기반으로 한다. 그 호의를 쉽게 외면하지는 말자. 호의를 받아들이고 잡담을 이어가는 그 순간이 삶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창피해서 말을 못하겠다’는 것은 결국 자의식이 너무 강한 결과로 생겨난 사고다. 거기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빠져 있다. 대화는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상대가 있어야만 성립된다. 잡담을 걸어오는 상대는 어떠한 반응이나 응답을 바란다.그것이 화술 전문 강사처럼 화려한 말일 필요는 없다. 주위 사람이 다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난 이야기도, 촌철살인과 같은 코멘트도 필요 없다. 슛도, 스매시도, 홈런도 아닌 작은 패스면 된다.
상대는 응답을 받는 것으로 소소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고 싶어 한다. 당신과의 사이에 놓인 장벽을 제거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는 것뿐이다. 어차피 의미 없는 잡담이다. 우선 의식적으로 자의식의 장벽을 낮추자.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남김없이 입 밖에 내면 된다.
나는 여전히 잡담이 어렵다. 아무래도 내성적인 성향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 꺼리를 찾는 것도, 말을 먼저 꺼내는 것도 내겐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다. 하지만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좋은 관계를 맺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일은 즐겁다. 서로의 호의와 호감을 기반으로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은 삶의 행복 요소를 늘려가는 일이기도 하다.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언젠가 나도 내 삶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무엇인지 리스트를 작성해본 적이 있다. 회사 출근 후 동료들과의 티타임, 잠들기 전 아내와의 대화처럼 가까운 사람들과의 편안한 대화 시간이 중요했다. 의외였다. 무언가 즐거운 이벤트들이 큰 행복에 영향을 줄 것 같았지만, 사실은 일상의 잡담이 삶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어쩌면 누구나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통해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잡담은 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시도하는 작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금 시대에 잡담력을 익힌다는 것은 강하게 살아남는 힘을 익히는 것, 그 자체나 다름없다. 또한 자신이 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힘인 동시에, 그 힘은 주위 사람들을 살리는 힘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구원받고,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람은 치유된다.
언어를 가진 인간만이 갖는 잡담력은 살아가기 위한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장이 아니라, 잡담력은 생명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좀 더 심오하게 말하자면, 잡담은 인생의 모든 것이다. 태어나서 잡담을 익히고 성장하고, 잡담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리고 마지막도 잡담을 남기고 떠나간다. 그것이 인간이다. 잡담이란 ‘살아가는 힘’ 그 자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