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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l 28. 2018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 사회물리학

<사회적 원자> 마크 뷰캐넌

인간 사회와 물리학 


정권교체를 가져온 수백만의 촛불집회, 젊은이들의 마음을 휩쓸고 간 비트코인 광풍, 갈수록 낮아지는 결혼율과 출산율, 떨어질 줄 모르는 부동산 가격... 대한민국의 이런 사회현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패한 권력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 불안한 청춘들의 일확천금 판타지, N포세대들의 팍팍한 삶, 부자들의 탐욕처럼 사람들이 가진 성향 또는 사회경제적 환경으로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사회현상의 논리적 과정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움직이는 인간 사회의 역동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자연과 같이 다양한 변수들이 상호작용하는 "복잡계"이다. 우리는 종종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망각할 때가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원자들로 구성되며 원자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 상태가 물질의 성질을 결정한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원자(인간)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 상태가 원인이 되어 사회적 현상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물리학이 자연세계의 법칙을 발견했듯, 인간사회의 보편적 법칙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법칙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고, 나아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적 원자>는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과학자들은 인간 세상에서도 법칙에 가까운 규칙성들을 발견해 가고 있다. 지금은 이러한 규칙성이 개인의 자유의지와 아무런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책의 중심 아이디어는 갑작스러운 민족주의의 폭발, 산아 제한과 여성 교육 사이의 이상한 관계, 지속되는 인종 분리 그 밖의 수많은 중요한 사건들이나 평범하고 흥미로운 사회 현상들(금융시장, 정치, 패션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아니라 패턴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이유는 원자가 빛나기 때문이 아니라 원자들이 특별한 패턴으로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부분이 아니라 패턴일 때가 많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 적응-모방-협력


‘사회적 원자’로서 인간이 보이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적응과 모방, 협력이다.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이자, 사회적 패턴들을 만들어 내는 요소이다.  아마도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한 상호작용 방식들이 인간의 DNA 안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1) 적응하는 능력


고전 경제학은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보았다. 실제는 다르다. 인간에겐 이해타산적인 합리성이 있지만 동시에 본능을 따르는 존재다. 지름신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를 하기도 하고, 나의 손해를 감수하고서 타인을 돕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의 선택을 통해 학습한다. 지름신에 대한 순종이 어떤 경제적 피폐함을 주는지, 타인을 돕는 행위가 내 삶에 어떤 행복감을 주는지 깨닫게 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과 학습의 결과를 토대로, 그때그때 최적의 선택을 해나간다. 인간이 다양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학습에 기반한 '적응적 사고능력'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의식적인 부분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논리 때문이 아니라 적응하는 능력 때문이다. 규칙, 아이디어, 상식 등을 바탕으로 일단 해 보고, 그다음에는 결과에 따라 적응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라는 것 자체는 대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첫 번째 추측보다 더 나은 답을 얻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지성의 진정한 비밀이다.


2) 모방하는 능력


두 번째 특징은 ‘모방 능력’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사회적 압력을 느낀다. 나만 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한 사회 안에서 구성원들이 서로를  모방하며 얼추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이다. 또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에는 타인의 행위를 따라 하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처음 방문한 관광지에서 사람이 없는 식당에 들어가기 싫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본능적으로 신뢰했을 것이다. 똑같은 메뉴를 팔지만 유독 한 집에만 줄이 길게 늘어서는 것도 인간의 '모방 능력'에 기인한다. 수입차 판매량이나 캠핑족이 늘어나는 현상도, 심지어 결혼이나 출산율까지도 인간의 모방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 불법으로 '댓글 부대'를 동원하는 일도 인간의 이러한 모방 성향을 겨냥한 것이다.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주는 영향이 강하면 사회 변화는 빠른 정도가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일어나서, 인구의 상당 부분이 하나의 행동이나 한 사람의 견해에 따라 거의 같은 순간에 변화한다.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게 놓아두면, 그들은 대개 서로를 흉내 낸다. ...... 개인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사회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획일화되는 일이 많다


3) 협력하는 능력


마지막은 ‘협력’이다. 인간은 강한 호혜주의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순수한 이타성을 보이기도 한다. 거래에 있어서 공정성을 중요시하며,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조직이나 공동체에 기여하려 하거나 남을 도우려는 존재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단결하고 협력하는 공동체가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 우리 본성에서도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특성은 양면성을 가지는데 공동체나 조직 내부의 협력을 위해 공동체 바깥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만들기도 한다. 공동의 적을 만들어야 단결이 잘되기 때문이다. 야만적인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되는 민족주의적, 종교적 갈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이성이나 난민 등 내 경계 바깥에 있는 존재들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그렇다. 경제가 어렵거나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강한 호혜주의는 단지 행동적 특성으로, 사회적 원자가 협력을 성취하는 사회적 접착제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인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집단에 협력하고 응집하는 것은 원자들 사이에 인력이 작용해 원자들이 응집해서 고체르르 형상하는 것과 닮았다.

#바람직한 사회적 결과를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산물로 보면서, 동일한 인간 본성이 만드는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역사를 돌아볼 때 인간이 가진 증오와 폭력의 능력도 분명히 우정과 협력의 능력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국가와 기업에 적용되는 흥망성쇠의 법칙


사회적 원자들이 이끌어가는 역사에는 어떠한 반복적인 패턴과 과학적 법칙이 존재하고 있을까. 칼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의 법칙을 주장하며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가 '과학적'으로 도래할 것이라 예언했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위기가 도래했고 노동자 계급의 저항은 거세졌다. 그러나 체제의 위기를 인식한 인간은 '적응 능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며 '역사의 법칙'을 폐기시켰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른 역사의 패턴을 소개한다. 거대한 제국에서부터 현대 사회의 기업에까지 모두 적용되는 패턴이다.  


앞에서 인간이 가진 상호작용의 특징으로 '협력'을 꼽았다. 협력은 공동체가 살아남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국가든 기업이든 구성원들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응집되어 운영되는 공동체가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은 공동체는 성장하고 번영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번영한 국가와 기업에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무임승차, 부정부패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구성원에 대한 관리 능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일부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가 공동체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적응과 모방'의 능력이 공동체의 운명을 바꾸기 시작한다. 야망과 역량을 가진 유능한 직원은 다른 직원들의 무임승차로 자신이 손해보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직을 시도하며, 무능한 직원들은 다른 게으른 직원들을 모방한다. 결국 기업의 경쟁력은 점차적으로 약화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부정부패와 이기적 행위들을 모방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게 되면, 공동체 내 불평등이 강화되고 사회적 응집력은 현저히 약화된다. 옛 제국들과 대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설명할 수 있는 패턴이다.


파레토의 부의 자연법칙에 따르면 강력한 국가는 언제나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로 나뉜다고 한다. 바로 앞 장에서 보았듯이 불평등은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효율적인 경제를 망친다. 이러한 붕괴는 아주 뿌리가 깊어서 불가피해 보인다. (중략) 불평등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효율적인 통치 제도를 좀먹고 전체 사회에 피해를 입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동기를 제공한다.


사회물리학과 변화의 리더십


사회물리학은 국가나 기업 조직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적용된다. 우리 주변을 관찰해보면 잘 조직화된 사회적 패턴이 있는 반면, 아무리 조직화하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패턴이 있다. 지하철 노약자석 배려 문화는 잘 정착되었는데,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캠페인은 정착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사회물리학적 시선에서 바라보고 설명을 시도할 수 있다.


사실 사회물리학적 접근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이유는 변화의 리더십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리더십과 관련된 교육을 받을 때 추천받았다. 당시 조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매주 조별 회의 시간이 끝난 후 '리플렉션 메모'라는 것을 작성해 제출했다. 리플렉션 메모의 주요 내용은 회의 진행 과정에서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당시 메모 중에는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제대로 공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로 자기 생각만 이야기하다가 시간에 쫓겨 회의를 끝냈다'는 식의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회의 패턴은 이때만이 아니라, 다양한 회의에서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즉 일반화된 사회적 패턴 중 하나인 것이다.


교육생들은 이 메모를 반복하여 작성하는 과정에서 우리 조의 회의 과정을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고, 회의 패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하게 되었다. 즉, 사회물리학이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생각의 힘을 더해준 것이다.


사회물리학을 모른다고 해서 리더십이 부족해진다거나 세상 살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 사는 세상을 좀 더 명쾌하게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사회물리학의 접근방법이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세상'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정, 나의 회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내 주변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패턴들을 찾아보고 더 나은 패턴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집에 들여놓은 운동기구를 3일 이상 쓰지 못하는 패턴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과학이 우리의 삶에 물리적 편의를 더해주듯, 사회물리학도 분명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단서들을 제시해 줄 것이다.


#사회적 원자의 대략적인 특징을 알아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알아낸 다음에, 여러분이 가진 도구, 그것이 수학이든 컴퓨터든 뭐든, 그 도구를 사용해서 거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패턴의 종류를 알아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아본다. 이것이 바로 과학을 하는 방식이다. 인간을 다루는 '과학'들 말고 말이다. 사회 과학이 아직도 이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위대한 사회 사상가들이 과거에 했던 것이 바로 이런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명백한 경향이나 단순한 순환 과정은 없는 것 같다. 뉴턴의 방정식 같은 몇 가지 방정식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만 아니라 패턴에 주목했을 때, 역사에 어떤 식별 가능한 과정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신만의 리듬과 특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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