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의 맛, 이런 맛이다

[넷플릭스 추천작] 미생

by 재희

늘 관심 있었던 드라마인데 무려… 8년 만에 봤다. 그동안 인연이 없었던 모양.


역시 직장인 현실 고증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리얼리즘이 먹혔던 것 같은데, 요즘이라면 젊은 세대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욕할 것만 같은 느낌.


공정 이슈.. 열정페이.. 직장갑질.. 사생활 침해.. 뭐 하나 걸리지 않는 게 없다. 젊은 친구들과 일하다 보니 자기 검열이 심해진 건지. 8년 사이에 직장 문화가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암튼… 미생, 난 너무 재밌게 봤다. 삶의 맛이 느껴지는 드라마. 삶의 본질은 부조리함이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없고, 잘못된 것이 옳은 것이 되어 있고, 납득되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그 막막하고 답답한, 때로는 고통스러운 부조리함.


특히 원인터내셔널 신입사원 4인방을 통해 시청자는 부조리를 격렬히 경험한다. 안영이의 가정사와 부서 내 왕따, 한석률을 괴롭히는 사이코패스 상사, 장백기의 무쓸모 스펙, 장그래가 보여주는 21세기 신분제…


미생1.jpg 출처: TVN 홈페이지


인간은 부조리함을 견뎌내야 한다. 그것이 삶이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최 전무도, 오 차장도, 장그래도 마찬가지다. 버티는 방식은 저마다 다양하다. 생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버티고 살아남아서 나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게 삶이다. 그 과정에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즐거움도 있다.


삶의 처연함에 공감하며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료를 생각했다. 삶의 동료들이 있을 때 부조리함을 버티는 힘이 생긴다.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애쓰는 상사와 선배, 동기들이 그랬다. 서로의 고충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응원하는 동료들의 모습에서 버티고 이기는 방법을 배운다.


난 요즘 후배 동료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물어보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그런 대화가 조심스럽다. 그런데 업무 얘기만 해서는 동료로서의 ‘신뢰’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것 같다. 관계의 가벼움이 삶의 스태미나를 약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찐한 동료가 없는 삶의 맛은 심심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실패와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