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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Oct 29. 2022

이어령이 남긴 지혜의 문장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이어령

리뷰를 하기에 주제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마음에 닿은 몇몇 문장들만 사진처럼 기록으로 남긴다.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의 출발이지.


철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아까 말한 자연계, 법계, 기호계처럼 범주를 구분해서 사고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고,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라네.


손잡이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손잡이 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그게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모든 일이 그래. 재밌어서 하면 저절로 이익도 된다네. 우리가 이익을, 이자를 내려면 애초에 관심 있는 것, 흥미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interest가 출발이지. 그게 모든 일의 순서고 이치라네.


럭셔리한 삶...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 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나.


하나님이 주신 것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사는 사람이 천재라네.


원래 길의 본질이 그래. 끝이 없어. 이어지고 펼쳐질 뿐.


프로세스! 집이 아니라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나. 나는 멈추지 않았네. 집에 정주하지 않고 끝없이 방황하고 떠돌아다녔어. 꿈이라고 하는 것은 꿈 자체에 있는 거라네.


인생도 그렇다네.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어. 그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예술가가 되는 거야.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네.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만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그 모습이 비참이든 숭고든. 고난이라는 실전을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기독교는 하나님이 끝없이 인간을 용서하는 종교일세.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큰소리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


목자는 양의 앞도 뒤도 아닌, 양 떼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양을 지켜낸다네. 진정한 목자는 양가죽을 쓰고서라도 스스로 양이되어 그들의 삶에 동참하는 거야.


목적 같은 것 없어. 생명, 살아있는 것, 그게 이 세상이라네. 눈물 나는 세상이라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신은 생명을 평등하게 만들었어요. 능력과 환경이 같아서 평등한 게 아니야.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 게 평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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