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 쪽 일이었다. 인기 아이돌이나 연예인의 화보를 제작해 모바일로 제공하고, (지금은 추억이 된) 벨소리/컬러링 판매 서비스도 운영하고,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에는 앱 서비스도 기획하고 개발했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사업적 성과도 내면서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허전한 마음이 늘 있었다. 매출 지상주의 속에서 때로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더 가치를 느낄 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고민이 깊어질 때쯤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일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기도를 한다고 항상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하나님에게 묻기도 하고 내 마음의 정직한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나름의 답을 발견했는데…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가장 낮은 곳에서 아이들을 돕는 일.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그렇게 비영리단체로 이직을 했다.
단체에서 일하던 시간이 내게는 참 행복했다. 주로 온라인 모금 플랫폼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며 많이 울기도 했고 아이들과 가정을 직접 도울 수 있어서 보람도 있었다. 서로 의지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었던 선한 동료들도 소중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결혼도 하고 자녀도 갖게 되면서 삶의 중요하고 기쁜 순간들을 보냈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공동체를 위해 선한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러웠다.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고 아이가 크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생겼다. 무엇보다 경제적 불안이 컸다. 우리 사회에서 비영리단체의 일은 봉사활동처럼으로 여겨지고 급여 수준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민감하다. 단체들도 규모가 큰 곳은 더 커지고, 작은 곳은 더 어려워지는 현상도 있다. 입사 6년 차 팀장급이었음에도 월급의 실수령액은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엔 (정말로) 부족함 없이 생활했지만 아이가 크면서 필요한 돈이 조금씩 늘어났다. 가족에게 경제적 안정감과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커리어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조직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지금 내가 가진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다. 매너리즘을 이겨내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성장을 바랐다.
이직을 결심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생각했다. 1)소외된 이들을 위한 일 2)가족에게 경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일. 전문적인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여유도 없고… 기업 사회공헌 포지션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사회공헌 채용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사회공헌 조직이 따로 있는 기업이 얼마 없는 데다 (홍보팀이나 총무팀에서 겸임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기업 재단도 웬만한 대기업이 아니면 규모도 작다. 나의 도전은 조금 과장하자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의 Jamie Temple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