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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15. 2018

행복을 글로 배웠습니다

삶을 버텨내기 위한 생존의 독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직장이 힘들다고 해도 처음부터 퇴사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취업과 이직이 쉬운 일도 아니고 더구나 전 직장보다 좋은 조건으로 입사했다면 더욱 그렇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저런 방법들을 연구하고 시도해보고 성공적인 방법을 내 삶에 적용해야 한다. 학습을 통한 적응이다. 나는 직장생활이 힘들던 때 ‘책’을 통해 그 방법을 찾아 나섰다.


무엇보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쳐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면 행복은 따라온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행복은 추구해야할 가치가 아니라 성공하는 인생에 따라오는 전리품처럼 여겨졌다.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성공과 행복은 별개의 문제다. 좋은 대학과 대기업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성취감을 통해 행복을 느낄 지 모른다. 하지만 그 행복이 언제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처럼.


그래서 책으로 라도 행복을 배워보자 싶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여러 책들을 둘러보고 두 권을 선택했다. <해피니스 트랙>(에마 세팔라 저/이수경 역/한국경제신문)과 <행복의 기원>(서은국 저/21세기북스)이었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해피니스 트랙>에는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에마 세팔라가 제안하는 행복한 삶의 방법론이 담겨 있다.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미래를 살지 말고 현재를 살라는 것” 이다. 미래의 성공이나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재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당연시 여기지 말라는 말이다. 성공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미래 목표에 집중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태도가 일의 생산성과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한다. "현재를 즐기라"는 흔한 조언이 과학적으로 옳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경력과 직급이 올라가면서 스트레스도 함께 쌓여갔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나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었다. 끊임없이 무언가 일을 하거나 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만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 해에는 연차를 거의 쓰지 않은 적도 있다. 그저 자리를 비우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었다. 일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 존재의 이유인 것처럼 살았다. 책은 이런 내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일과 성과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잃어버리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일을 할 때에도 걱정과 염려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현재에 충실한 태도는 일종의 ‘몰입’ 이다. ‘현재에 집중할 때, 즉 현재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할 때 정서적인 행복도가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는가 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 행정적 서류를 작성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으로 별로 즐겁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일지라도 거기에 100퍼센트 집중하면 마음을 딴 데 두고 뭔가를 할 때보다 행복감이 더 높아진다.

이직을 한 후에 겪었던 어려움 중 하나가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직장 안에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너무 많았다. 수시로 메일과 메신저, 입으로 전달되는 업무들 가운데 마음은 집중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헤매었다. 게다가 새로운 직장에서 `잘 해야 한다` 는 부담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내 마음을 압박했고 불안한 마음은 더 커졌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업무에 대한 집중은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책을 읽고 나서 작은 실천을 해보기로 했다.  ‘한 번에 한 가지’ 업무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서류를 작성 중일 때는 메일이나 메신저를 읽지 않았다. 중요한 내용을 마무리한 후에 다른 업무를 처리했다. 오래 걸리지 않는 메일 관련 회신은 한 번에 몰아서 처리 했다. 이렇게 ‘한 번에 한 가지’ 원칙을 적용하니 일의 능률이 더 올랐다. 마음의 분주함도 줄었다. 많은 업무를 빨리 그리고 잘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오히려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니 다른 걱정이나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아 좋았다. 나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집에서도 ‘한 번에 한 가지’ 만 생각하려 했다. 그 동안은 무엇을 하든 회사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특히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가족과 함께 있어도직장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데도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럴 때면 괜히 예민해져서 아내와 아이에게 불똥이 튈 때도 있었다. 가족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의 맛을 즐기는 데만, 아내와 대화할 때는 대화 내용에만, 아이와 놀아줄 때는 놀이에 빠져들려고 집중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부정적이거나 불안한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훈련했다. 내가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있으면서 머리 속에 회사 일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면 다시 가족과의 식사에 집중할 수 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훈련을 통해 충분히 나아질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 지금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인간을 가장 즐겁게 하는 것, 사람과 음식


<행복의 기원> 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행복에 접근한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행복을 경험하는 이유를 연구한 결과들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경험을 할 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뇌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경험한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 행복한 삶에 대한 두 가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인간의 행복은 무척 일상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거나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내 마음의 상태다. 즐겁고 기쁜 감정,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 만족스러운 기분 등 긍정적인 마음이 부정적인 것을 앞설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일상적인 경험을 할 때마다 행복을 경험한다. 특히,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두 가지를 통해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 바로 우리가 매일 같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음식, 그리고 사람’이다.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할 때. (중략)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다른 하나는 나와 조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공동체나 조직 안에 소속될 수 밖에 없다. 험한 세상을 나 홀로 살아남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직을 위해 기여도 하고 조직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조직이 내게 바라는 것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지 못하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위계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화로 인해 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는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개인적인 성향도 한 몫 한다. 나는 조직 순응적인 성향으로 인해 내가 원하는 것보다 조직이나 상사가 원하는 것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며 산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말로 꺼내는 것도 어렵다. 피곤한 스타일이다. 조직의 눈으로 보면 호구로 비칠 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이나 요구를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동료들을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 진짜 행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남에게 내어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 먼저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행복한 문화에 사는 사람들은 그녀처럼 자신의 삶과 선택에 당당함과 자신감이 넘친다. 인생의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다.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그래야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다.


행복한 직장생활을 글로 배운다고 금방 행복해질 것 같았으면 이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작은 실천들을 해보면서도 마음살이는 썩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행복에 대한 갈급함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게 했다. 잠시나마 불안과 두려움을 마음에서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일종의 ‘생존독서’ 다. 살아남기 위해, 삶을 버티기 위해 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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