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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13. 2018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직 후 1년, 적응에는 고통이 따른다

적응에는 고통이 따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어떤 환경에 던져 놓아도 그 속에서 살 길을 찾는 것이 인간이다. 현대 사회처럼 인간의 적응능력을 요구하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사회문화적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적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따른다. 내 몸과 머리가 알고 있던 것들을 완전히 바꾸는 ‘변태(變態)’의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20대에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고 재활을 위해 수영을 오랫동안 배운 적이 있다. 땅 위에서만 걷던 동물이 물 위에서 떠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꾸만 가라앉는 몸을 키판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띄웠다. 처음엔 발차기만 몇 달을 했다. 발차기로 25미터를 가는 길이 25킬로미터를 가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자유형을 배울 때도 앞 사람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늘 부끄러웠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더는 못 가겠다고 포기할 때도 많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치고 힘들었다. 수영장 가는 발걸음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6개월이 되자 몸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10개월쯤 되었을 때는 500미터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었다. 물개는 아니어도 물방개 정도는 된 것 같았다. 인간이 물에 적응하는 데에도 이렇게 긴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정도를 제외하면 ‘평생직장’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직은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며 이직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환경변화 중 하나다. 하루 중 절반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삶의 터전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조직의 문화도 바뀐다. 새로운 직장 환경에 잘 적응하는 지가 성공적인 이직의 관건이다. 만약 새로운 환경이 이전 직장과 크게 다르다면 적응의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새로 옮긴 직장은 업계에서 매출 규모가 높은 대기업이었다. 지금까지 다닌 직장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면접과 채용 과정의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짜여 있어 ‘역시 대기업은 다르구나’ 싶었다. 직원 10명 규모의 비영리 단체에서 1,500명이 넘는 대기업으로의 이직은 내 삶의 환경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가장 큰 변화는 조직 문화다. 일과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가 내게 큰 벽처럼 다가왔다. 어떤 조직이든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고 성과를 달성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성과 달성을 위한 동기부여 방식은 조직마다 다르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자율성, 훈련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철저한 업무와 성과 관리로 결과를 만드는 조직이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은 후자에 가까웠다.


각 방식마다 장단점은 존재한다. 리더의 역량이 있을 때 통제와 관리는 효과적이다. 실제로 우리 조직의 리더는 성과를 만드는데 뛰어난 역량이 있었고 원하는 그림에 따라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리더가 모든 주도성을 가지는 경우, 수동적인 구성원들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약화된다. 일은 사람이 하는데, 즐겁지 않으면 누구나 지치기 마련이다.


조직이 원하는 그림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분위기가 바뀌었다. 말에는 날이 섰다. 무방비 상태에서 날카로운 말에 베여 피를 흘리기 십상이었다. 낯선 조직에 들어와 마땅히 의지할 곳도 없었다. 매일 같이 무방비 상태로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 들었고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


언제부터인가 아내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옮긴 지 6개월쯤 되었을 것 같다. 퇴근 후엔 늘 부정적인 이야기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 잠들기 싫어...
내일이 오는 게 너무 겁나


몇 달 전만 해도 이직에 성공해서 아내와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 했는데, 정말 인생은 예측하기 어렵다. 침대에 누워 베갯잇을 적시는 날이 늘어났다. 내게 눈물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다.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이래도 직장을 나가야 하나. 사는 게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아내에게 나직이 이야기했다.

“나 안아줘”

아내 품에 안기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 나를 품어주는 곳이 있다는 안도, 세상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는 위안이었다. 아무래도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끝없이 가라앉기만 하는 마음과 떠나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을 아내가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차마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는 못했다.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가족을 위해서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도 살고 싶었다. 죽을 것처럼 힘든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다. 아내에겐 이직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도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게 안쓰러웠나 보다. 괜찮은 데가 있는 지 알아보라고 했다.


출퇴근 시간마다 취업앱에 들어가 채용공고를 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혹시 몰라 이력서도 사이트에 등록해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맞는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경력으로 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대리급을 채용하려는 의도여서 결과는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이직에 대한 열망이 컸던지 새벽기도도 다니고 교회 목사님에게 기도 부탁도 드렸다. 목사님에게 지금 직장이 너무 힘들어 이직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또 울었다. 정말 바닥을 기고 있었던 시기다.

결과는 서류탈락. 실오라기 같은 희망 마저 끊어져 버렸다. 이직의 기쁨을 맛보고 일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런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허망했다. 정말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며 살았다. 그 후로 헤드헌터에게 2번 정도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내 경력과 어울리지 않았고 자신있는 영역도 아니었다. 게다가 섣불리 이직할 일도 아니었다. 조심스러웠다. 상황이 더 나빠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흘러갔다. 당시 새해를 맞으며 SNS에 글을 올렸다. 스스로 내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게 더 필요했던 것은 ‘용기’ 였다. 예측불가능한 삶의 파도에도 무너지지 않고 맞서겠다는 용기. 인간이 적응의 동물인 것은 생존에 대한 욕구와 함께 고통도 참고 이겨내겠다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송구영신>


가시에 많이 찔렸다.
상처가 났고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가 났다.
따갑고 쓰려서 죽겠다고 끙끙댔다.
그렇게 아팠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았다.
정말 난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서글펐는지
세상 짐 다 짊어진 것처럼 자주 울던 때가 있다.
내 마음의 둑이 무너졌다.

내 눈물을 받아준 건
내 삶의 두 절대자, 하나님과 아내였다.

새벽엔 하나님을 찾았다.
거창한 기도 제목 따위는 없었다.
살려달라고만 기도했다.

저녁엔 쓰러질 것 같은 마음을 아내에게 기댔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버텼다. 혼자가 아니어서.
내 무너진 마음 알아주는 이가 있어서.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나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불쑥
뾰족한 가시를 내밀지는 않았는지.

내 상처 아픈줄 알면
주변도 살피며 겸손히 살아야 한다.

올해는 상처도 아물고 더 즐거운 일이 많으면 좋겠다.

그냥 다 털고 떠나버릴까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선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내가 서 있는 이 곳도
행복을 향한 선택들이 이어져 왔을 뿐이다.
난 한 번도 불행을 선택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삶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언제나 내 통제 밖에 있다.
간단치가 않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행복도
어쩔 수 없이 다 내 것이다. 골라 담을 수 없다.

때론 견디고 버티면서
때론 웃고 즐기면서
삶의 파도 위에 올라탈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용기를 더 가지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섭리까지 끌어안고 감당하겠다는 용기.
험한 삶의 파도 속에서도 사랑하며 정의롭게 살겠다는 용기.

용기 있는 삶,
그 다음의 결과는 내 몫이 아니다.
그 분의 은혜를 구할 뿐이다.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올 한 해의 삶.
그래서 기대가 되고 소망을 가지게 된다.

특별히 깊은 상처로 아픔을 겪었던 모든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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