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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06. 2017

죽음 앞에 선 의사, 가치 있는 삶을 묻다.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죽음의 기억을 소환하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했다. 아버지는 1년간 투병하셨다. 우린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원룸을 구했다. 평소엔 나 혼자 지냈고 부모님께서 치료를 위해 대구에서 올라오시면 셋이 한 방에서 지냈다.  

치료는 무척 지치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쇠약해지셨다. 나중에는 식사도 대화도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 나는 그저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실까' 수준의 걱정을 했다. 사실 아버지도 가족들도 마지막 순간이 그리 갑자기 들이닥치리라 생각지 못했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는 당시 아버지가 감당해야 했던 '죽음'과 맞닿은 삶의 순간들을 소환시켰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마음으로 지내셨을지, 상상해볼 용기를 주었다.


죽음에 가까이 가고 싶었던 의사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폴은 실력을 인정받는 스탠포드 대학의 신경외과 레지던트다. 이제 30대 중반이지만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교수 초빙을 받는 등 그의 미래는 진한 장밋빛이었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왔다. 그가 느꼈을 깊은 절망감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는 의사가 되기 전 문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진실된 관심은 그를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의사의 삶을 통해 '죽음'에 가까이 가고 싶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폴은 죽음과 맞닥뜨린 환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삶이 비로소 죽음에 가까이 갔을 때, 그는 죽음에 대해, 의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깨달음을 얻는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질문


폴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그의 질문에 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술대에 선 의사로서,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삶의 통찰을 전하는 작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가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가장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한 인간의 숭고한 선택의 연속이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질문은 다시 독자에게로 향한다.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어떤 삶인가?' 폴은 누구도 이 질문 앞에서 도망갈 수 없도록 우리를 붙들어 둔다.

"죽음"을 마주한 이가 던지는 이 "삶"에 대한 질문이야말로 이 책의 정수가 아닐까.  


코끝이 시큰거린 이유


나는 폴과 나이가 비슷하다. 아내와 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그의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 마음이 아렸다. 아내와 자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가 마지막에 딸에게 남긴 메시지는 너무나 공감이 돼서 코끝이 시큰거렸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이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책의 맨 끝페이지는 가족의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 사진이 있다. 사진은 책에서 받은 감흥을 가슴속에 잔잔히 새겨준다. 편집자의 사소하지만 영민한 전략이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는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아쉽게도 기대만큼 임팩트(?)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만은 분명히 허락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마지막 1년을 생각했다. 폴의 딸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에게 기쁨이 되어주었을까? 왜 좀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마음먹지 못했을까 하는 소용없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만큼, 누군가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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