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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pr 20. 2019

일요일 오전 8시 나는 끌려갔다

신앙은 강요로 성장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시절. 일요일 오전 8시 KBS 2TV에서는 ‘디즈니 만화동산’ 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90년대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TV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지금은 유튜브도 있고 IPTV도 있어서 24시간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당시만 해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과 공간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거실에 놓여 있는 14인치 텔레비전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요일 오전 8시부터 딱 1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그날의 만화동산은 다시 볼 수 없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일요일 오전 8시는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자칫 늦잠이라도 자서 만화동산을 놓친 날이면 땅을 치며 억울해 했다. 만화 한 편이 그렇게 소중했던 시절이다.


추억의 디즈니 만화동산


하지만 모태신앙이었던 나에게 일요일 오전 8시는 교회가기 10분전일 뿐이다. ‘디즈니 만화동산’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다 보는 걸 왜 나만 못 봐야하는 지 어쩌면 인생의 부조리를 가장 먼저 느낀 순간인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교회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서럽게 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초딩이 무슨 힘이 있으랴. 무섭게 노려보는 엄마의 눈길 앞에 나는 한 마리 힘 없는 어린양에 불과했다. 일요일마다 난 만화동산을 뒤로 하고 교회 버스를 타러 나갔다. 교회는 내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소위 3대째 기독교 집안인 우리집에서 교회를 가지 않는다는 것은 호적을 파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교회학교와 만화동산. 게임이 안된다.

많은 신앙인들이 모태신앙은 ‘복’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교회 안에서 성장하니 신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이들이 교회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찬양과 율동이 어색하지 않고 통성기도에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믿고 가까워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도덕 수업을 12년 듣는다고 도덕적인 삶은 사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은 어떤가? 성경을 아름답게 수놓는 믿음의 인물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죄악의 길을 향해 치달은 수 많은 왕들로 인해 멸망을 경험했던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이들도 모두 모태신앙이었다.


모태신앙인 야곱(이스라엘)의 아들들. 그들의 삶은 과연 신앙적이었던가.


모태신앙인 것이 ‘불행’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가기싫은 교회를 왜 가야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신가?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어다 앉혀서 믿음을 강요하는 그런 사람. 밉상 중에 밉상일 뿐인데.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불순종할 자유를 주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내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을까? 교회와는 담을 쌓아놓았을까?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으신 부모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선하신 하나님도 아담과 하와에게 불순종의 길을 열어주지 않으셨던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6살 아들도 나처럼 교회 안가겠다고 떼 쓰는 날이 올 지 모른다. 그 때 난 어떻게 해야할까? 억지로라도 끌고 가야할까. 용돈으로 꼬셔야할까. 그냥 내버려둬야할까. 하나님이 바라시는 방법은 무엇일까? 모태신앙 자녀를 둔 내게 남겨진 숙제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음을 강요하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태신앙이어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모세를 사용하신 하나님도,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도 그들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강요도 방임도 아닌, 사랑으로 진실된 권면을 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하나님 역시 그런 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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