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
어릴 적 내가 상상한 천국은 이랬다.
아무런 고통도 걱정도 없는 곳.
공부도 취업도 필요 없는 곳.
맨날 먹고 놀고 쉬는 곳.
항상 행복하기만 한 곳.
마치 몰디브의 근사한 리조트에서 공짜로 사는 삶을 연상했다. 천국 소망이 절로 생긴다. 이 땅에서의 삶을 어서 끝내고 빨리 천국에 가고 싶을 뿐이다.
고등학생 때 대학 진학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며 비슷한 상상을 했다.
‘고3까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만 들어가면 실컷 놀아야지! 대학은 천국일꺼야!’
20대에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며 돈 벌 때도 그랬다.
‘지금은 아껴서 돈 모으고 나중에 나이 들면 편히 여행이나 하면서 놀아야지! 돈 모아 은퇴하면 일도 안 하고 천국 같겠지!’
당장은 힘들지만 참고 견디다 보면 편히 쉬고 놀 수 있을 때가 오리라는 기대를 품는다. 특히 부모님 세대에게 그 기대는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전쟁 이후 당장 먹고살 것이 없었던 가난한 현실에서 풍족한 휴식은 죽어서나 닿을 소망처럼 멀게 느껴졌으리라. 어쩌면 그러한 소망이 휴양지 같은 ‘천국’의 이미지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은 천국을 몰디브 같은 휴양지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하나님이라면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어떤 천국을 만들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하나님은 고통을 인내한 대가로 천국을 주시거나, 쾌락으로 가득한 휴양지를 만드실 분은 아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곳에서 우리 인생이 멋지고 행복하게 펼쳐지길 바라신다.
2015년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였던 버니 샌더스가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메시지는 이 한 마디에 집약되어 있었고 그 메시지에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주 40시간을 일하는 사람이 빈곤해서는 안된다’
나는 천국이 이런 곳이라고 상상한다. 성실한 서민들이 가난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사는 곳,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평범한 기대 조차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부의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죽을 때까지 일해도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렵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은행과 건물주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모를 때도 많다. 공부를 배우기 전에 학자금 대출부터 배우는 나라, 알바와 계약직,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나라는 천국에서 한참 멀어 보인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년’을 명령하셨다. 매 50년마다 노예가 해방되고, 땅이 처음 소유주에게 돌아가고, 빚진 자가 빚을 탕감받는 제도다. 50년간 누적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가난한 자들이 다시 시작할 수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희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엿볼 수 있다. 나그네, 과부와 같이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풍성한 곳. 묶이고 갇힌 자들에게 자유와 기회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가득한 곳. 바로 그런 곳이 천국이 아닐까. 천국은 죽어서 들어가는 멋진 리조트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이 땅 위에 세워질 나라라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악과 싸우며 고군분투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싸움에 동참하도록 우리 마음을 두드리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