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로버트 뱅크스
주일 아침, 분주하게 교회 갈 준비를 한다. 교회는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주차를 하고 서둘러 본당에 올라가 자리에 앉아 짧게 기도한다. 예배가 시작되면 무대의 스크린과 목사님께 이목이 집중된다. 순서에 따라 찬양을 하고 기도하며 설교 말씀을 듣는다. 축도가 끝나면 예배 끝. 식당에 내려가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 부부 소그룹 모임이 있다. 보통 2-3 가정이 모여서 한 주간 살았던 이야기, 기도의 제목을 나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내가 주일 하루, 교회에서 보내는 풍경이다. 아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그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와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달랐을까? 우리에게 초대교회는 이상적이며 모범적인 교회를 상징한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은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모습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가장 먼저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구절이 떠오른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4:32)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내겐 현실감이 없었다. 동화책 같은 느낌이랄까. 영화나 소설처럼 내 머릿속에 당시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내 이목을 끈 책들이 있었다. 로버트 뱅크스가 쓴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와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이다. 제목에서처럼 초대 교회의 실상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주문을 넣었다. (가격과 분량이 무척 착하다!)
저자는 다양한 방식의 고증을 통해 초대교회의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럴 법하게 복원했다. 100% 일치하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책을 통해 당시 예배의 모습들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보낸 하루를 통해서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진 신앙에 대한 고민과 실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난 두 권의 책을 읽고 초대교회가 전하는 신앙의 메시지를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해보려고 한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초대교회의 예배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사제와 같은 예배 인도자도 없다. 함께 먹고 교제함을 통해 공동체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모두 예배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도, 순서지도 없다. 자유롭게 신앙의 문제를 토론하고 성령의 이끌림 가운데 기도하고 찬양한다. 모두가 예배 안에 깊이 참여한다. 경륜이 있는 영적 리더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때때로 개입할 뿐이다.
지금 우리의 예배는 ‘관람문화’에 가깝다. 주일 11시,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찬양과 설교를 성도들이 관객의 자리에서 감상하고 품평한다. 예배의 자리에 임하시는 하나님에 주목하기보다 무대 위 배우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참여하지 않는 예배는 ‘나’의 예배가 아니다. 무대가 아닌 하나님께 집중할 때 비로소 예배가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의 룰을 뒤집는 전복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1세기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신분제 사회 안에서 교회는 주인과 종을 차별하지 않았다. 주인과 종이 같은 자리에서 같이 음식을 먹었다. 교회에서는 민족, 성별, 나이, 지위, 재산에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귀한 생명이다. 하나님 안에서 높은 자는 낮아졌고 낮은 자는 높아졌다. 교회는 착취와 억압의 피라미드 체제를 뒤집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인 ‘나’의 모습은 어떤가? 세상의 악한 룰 앞에 저항하는가, 순응하는가.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타인에게 풍성한 생명을 전하는 삶을 사는지,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황폐하게 하는 삶을 사는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에는 회심한 이방인이 등장한다. 그는 세상의 차별적인 문화에 저항하는 동시에 국가와 지역사회, 이웃에 유익을 끼쳐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가족과 교회는 불의의 사고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며 함께 기도하고 자신이 가진 것들로 나눔을 베풀었다. 교회 안에서부터 밖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만나는 모든 이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길 바랐다.
현대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삶을 생각해본다. 동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고 있는가? 그들을 위해 마음 아파하며 기도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멀리 있는 이웃들을 위해 헌금과 기부를 할 때는 있지만, 정작 우리 가까이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일에는 소홀한 것 같다. 고통받는 인간의 삶에 직접 찾아오셔서 구원을 베푸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마음을 일상 속에서 닮아가려는 노력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다.
두 권의 책에서 드러나는 초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은 무엇보다 ‘일상적’이다. 예수를 믿는 삶은 어떤 특별한 형식을 갖추거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식사의 자리가 예배가 되고, 위로의 대화가 기도가 된다. 삶의 깊은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일상을 위협하는 우상숭배와 악한 문화들 앞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대안을 찾아 나선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예배이다.
웅장한 성가대나 오케스트라가 없어도, 세련된 밴드 연주와 찬양팀이 없어도, 장로님들의 유려한 기도와 목사님이 들려주시는 감동적인 신앙 예화가 없어도 우리는 예배할 수 있다. 아니, 예배해야 한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공동체 안에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 예배를 이끄신다. 하나님을 맛보게 하신다. 그리고 성령님의 세심한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우리의 작은 일상들도 예수의 향기로 덧입혀지게 될 것이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21세기 우리의 일상과 교회에서도 복원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