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신앙> 이효재
나, 사람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
이직 후 아내에게 꺼낸 말이다. 6년 정도 근무했던 비영리단체에서 기업 재단으로 옮겼을 때였다. 일터의 문화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 직장은 같은 신앙과 가치관에 기반한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일터였다. ‘함께’ 일한다는 정서적 유대감이 있었고 동료와의 관계가 직장에 대한 만족감을 높였다. 신앙적인 가치 지향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도 좋았다. 나름의 어려움도 있고 한계도 느꼈지만 신앙적 가치관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하지만 기업은 철저히 ‘성과’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단기간에 최대의 성과 창출을 지향한다. 동료와의 관계나 지향 가치는 성과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항목들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일하기보다는 내 업무 성과 챙기기에 급급해진다. 그리고 성과 중심의 문화 속에서는 신앙적 가치관을 지키는 일이 힘들어진다.
다행히 이제는 기업 문화에 많이 적응한 편이다. 살아남고자 나름대로 발버둥 치다 보니 회사가 요구하는 마인드와 태도를 조금은 이해한 것 같다. 하지만 신앙적 가치관은 상당 부분 포기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정신줄을 잡고 책을 들었다.
<일터신앙>의 저자는 15년간 신문기자로 일한 후 일터에서 수고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소명을 가지고 신학을 시작했다. 일터신학의 권위자인 폴 스티븐스 교수의 사사를 받은 그는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일터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신앙 지침서를 출간했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일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섬기며, 세상의 생명을 풍성하게 만드는 행위다. 일을 통해 이웃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요리사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통해, 정치인은 공정하고 올바른 정책 입안을 통해, 기업인은 유익한 상품 제작과 유통을 우리 삶에 기쁨과 평안, 안식을 제공할 수 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은 직장에서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수고하는 동료들의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동료들과 즐거움을, 안식을 공유하며 살아가야 한다.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겐 사람이 우선이다.
제자들은 효율적 업무 수행으로 최고의 열매를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짐을 짊어지고 함께 걸어가는 수고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고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제자의 운명이다. 제자의 삶은 좁은 길을 걷는 삶이며 순교자적 길을 걸어가는 헌신이다.
제자들은 자기 능력의 한계 안에 머물기보다는 성령의 은사를 구하며 직장 동료들과 소비자들을 탁월하게 섬기기를 원하게 된다.
‘일은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낯설지는 않다. 일을 통해 세상과 이웃을 이롭게 하는 것. 동료와 조직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기업으로 이직한 후 난 철저히 실패했다.
무엇보다 일이 사람보다 중요했다.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만드는 것에 전전긍긍했고 동료들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업무에 어려움이 있거나 일이 많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조직에 활기를 더하기는커녕 팀 분위기를 어둡게 하는데 기여했다. 파트너 기관들과도 마찬가지였다. 성과를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종용하거나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겉으로는 부드러웠지만 상대방에겐 갑질이었을 것이다.
기업에서 성과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과와 사랑. 이 어색한 관계의 두 가지 가치는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일터신앙>은 그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다만, 성과와 사랑이 공존하는 완성된 형태로서의 삶은 아니다. 삶의 ‘방향성’ 이자 ‘과정’ 으로서의 공존을 제시한다.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으며, 그 갈등은 수학 문제처럼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세상 문화와 다르게 살고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는 삶의 태도와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나 자신과의 싸움 일뿐만 아니라 이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문화와 조직, 제도에 대한 저항을 포함한다.
소명을 어떤 완성된 신앙행위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 길을 걸어가도록 격려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소명은 우리에게 부담과 죄책감이 아니라 시행착오 속에서 부단히 새로워지려는 노력으로 다가오게 된다. 소명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커 보이기만 하는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실제적으로 줄이게 된다.
소명은 모호하고 자기중심적인 일터에서 세상적인 문화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과 부단히 싸우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이기적이며 악한 본성이 여전히 내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시 도전해보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내 삶의 궤적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일터에서 ‘세상과 다른 삶’, ‘사랑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비록 절름발이 같이 기우뚱거리고 때로는 넘어질지라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가 크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오늘도 내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간절히 구하며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