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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ug 13. 2019

수술하긴 아직 젊으신데요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정관수술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일곱인데요.”
“아직 젊으신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수술대에 누워 남자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심으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말투였다.

“제가 어린 편에 속하나요?”
“아무래도 삼십대분들은 많지 않으시죠.”
“네...”
“수술하고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다시 풀어달라고. 근데 요즘은 레이저 시술이라 복원이 어렵거든요.”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도 들었던 이야기다. 예전에는 정관을 묶는 방식이라 복원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레이저로 지지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사에게 신기한 이야기도 들었다.

“인간의 몸이 가진 회복 능력이 대단합니다. 정관을 묶어 두어도 이걸 스스로 풀고 연결하려는 본능이 있어요. 실제로 수술 후에 자연복원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레이저 수술로 하는 겁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놀랍기도 하고 내가 자연의 섭리를 크게 거스르고 있다는 죄책감도 들었다. 나의 정관들은 그렇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의사는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보았는지 급히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 수술 동의서에 사인해주시죠.”



눈은 동의서를 읽어 내리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부부의 사전에서 ‘둘째’라는 단어를 지워야 한다. 후회하지는 않을까? 순식간에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아내와 진지하게 나누었던 고민의 시간이 떠올랐다. 때론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서로를 달래야 했던 시간들. 더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마취할게요.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세상 어느 곳보다 환하게 밝았던 수술실에서 나는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허리 아래로 칸막이가 있어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볼 필요는 없었다. 의사도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내 정관들을 찾아다녔다.

“왼쪽은 끝났고요. 오른쪽은 가늘어서 시간이 좀 걸리네요.”

정관의 굵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젓가락 같은 수술 도구로 정관을 잡으려 여기저기 휘젓는 게 느껴졌다. 마취 상태라 아프지는 않았지만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쉽지 않다고 느꼈다. 오래지 않아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다. 나의 소중한 생식 기능도 함께 끝이 났다.

“수술은 잘 되었어요. 한 달 정도 후에 무정자 검사하러 한번 오세요.”

낯선 병원에서 정액을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알겠노라 대답했다. 결제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데 수술 부위가 욱신거렸다. 마취가 풀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걷는 게 조금씩 불편해지더니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운전석에 앉을 때는 식은땀까지 났다. 오른쪽 정관 시술을 할 때 이리저리 휘저은 영향이 큰 것 같았다. 도저히 운전을 할 자신이 없었다. 지하주차장 한쪽, 차가운 운전석에 웅크려 앉아 20분 정도 통증을 견뎌야 했다. 핸드폰을 꺼내 아내에게 톡을 보냈다.

‘수술은 잘 끝났어. 근데 좀 많이 아파 ㅜㅜ’

이 아픔이 우리 부부가 선택한 길의 마지막 아픔일 수 있을까. 가보지 않은 길, 그 위에 펼쳐질 인생의 풍경 앞에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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