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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ug 27. 2019

분만실은 처음입니다

출산의 숭고함에 대하여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생전 처음 경험한 분만실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많은 산모들이 칸막이가 쳐진 침상에 누워 분만의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통증을 견디는 이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외비명은 어쩔 수가 없다. 당장에라도 뛰쳐 나갈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괴성을 지르는 산모도 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도 괴로운데 고통의 당사자는 어땠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나의 생명,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깊은 고통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 부부는 유도분만 일정에 맞춰 병원을 찾았고 진통이 시작되자 분만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분만실의 분위기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오롯이 자신이 견뎌내야 하는 고통에 힘들어했다. 아내가 반복되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할 때 쯤 무통주사의 도움을 빌었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긋지긋한 진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아... 자기야 나 너무 힘들어... 나 어떡해. 하아... 간호사 좀 불러줘”

간호사가 와서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했다.

“아직 1센치밖에 안되는데... 더 기다리셔야 해요”

간호사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무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분만실에서 24시간, 48시간을 보냈다는 지인들의 증언이 기억났다. 진정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고통의 시간이 지리하게 흐르던 어느 순간, 아내는 간신히 입술을 들썩였다.

“하아.. 나 수술 할래. 제발... 얘기 좀 해줘”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말하지 않았다. 고통 밖에 있는 사람이 고통 안에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사이에 선악의 갈림길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더 적합한 선택을 할 뿐. 아내는 수술을 선택하길 원했고 우리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희 수술 할게요. 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려 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순순히(?) 동의해주셨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산부인과 병원들 중에는 자연분만율을 높이기 위해 제왕절개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수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정말 핏덩어리 같은 아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감격스러운 순간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내 앞에서 놓여진 쭈글쭈글한 생명체가 그저 낯설게 느껴졌다. 어색한 첫 만남이었다. 내 자식, 내 핏줄, 내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 아직 믿겨지지 않았다.


첫째의 첫번째 사진


정말 감격적인 순간은 잠시 뒤에 찾아왔다. 얼굴이 퉁퉁 부어 만신창이가 된 아내가 수술대에 누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직 비몽사몽 같은 상태, 겨우 눈을 뜬 아내 곁에 아이를 데려왔다. 아내는 핏덩어리 같은 아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아내의 눈물이 아이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고마워. 무사히 찾아와줘서.


첫째는 아들이다. 아내는 딸을 더 원했지만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이제 첫째였으니까. 갓 태어난 아이는 정말 못 생겼다. 눈도 못 뜨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 하지만 창 너머로 바라보는 그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은 무척 신비롭고 사랑스럽다. 하품 한 번에, 기지개 한 번에, 미소 한 번에 호들갑을 떨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댄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오다니!

이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긴 시간을 견뎌준 아내에게 고맙다.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견뎌내느라 고생했다. 무엇보다 출산 과정에서의 고통, 제왕절개 수술 후에 찾아온 통증과 후유증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제왕절개는 분만의 고통을 줄여 주었만, 걷지도 서지도 못하고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절개수술의 후유증을 남겼다. 덕분에 난 아내의 소변주머니 옆에서 며칠밤을 보내야만 했다.

매일 아침 찾아오는 매스꺼움, 편히 누워서 잘 수 없는 허리 사이즈, 조금의 거동도 불편한 무게감, 날로 예민해지는 감정선,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분만 과정... 10개월 동안 한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불편함을 참으며 고통을 인내하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 있을까. 모든 살아있는 것의 탄생 뒤에는 죽음을 견뎌내는 희생과 사랑이 숨어있다. 엄마의 존재가 위대하며 출산의 모든 과정이 숭고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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