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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Feb 05. 2020

행복한 가정의 조건, 아빠 육아

<아빠가 육아를 시작한 후 바뀐 것들> 도준형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책상 앞에서 배우는 국영수 지식 말고, 인생의 생생한 진실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30대 초반, 결혼을 준비할 때만 해도 육아는 내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결혼하고 예쁜 자식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크게 힘쓰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전은 완.벽.히. 달랐다. 출산과 육아의 모든 과정은 전쟁처럼 위태롭고 긴장되었으며 치열했다.

도준형 작가의 책, <아빠 육아를 시작한 후 바뀐 것들>을 읽으며 그 전쟁 같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 시간이 내게 준 ‘공감’이라는 선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육아를 하면 만나는 세 가지 공감


작가는 아내와 주말 부부로 살면서 1년간 독박 육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육아의 어려움을 처절히 느끼게 되고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들의 목소리에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육아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자녀에 대해서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육아를 통해 내가 느끼고 공감했던 것들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공감) 육아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노동이다.

작가는 독박 육아를 경험하며 엄마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한 때는 ‘집에서 애나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멱살부터 잡을 태세다. 육아와 살림은 매일 반복되는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티 나지 않고, 없어서는 안 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몸서리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전업 육아맘들의 열혈 지지자가 되었다.


육아라는 일은 참 이상했다. 몸도 쓰고 머리도 써야 하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이었다. 나도 집에서 애나 보면 좋겠다고 말한 사람들에게 당장 달려가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육아라는 것이 시작은 있어도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육아를 시작한 지도 벌써 2년, 나는 매일 같은 일상(아이의 먹거리 준비, 빨래, 장난감 정리, 청소, 설거지, 어린이집 등하원, 놀이터에서 놀아주기, 샤워시키기, 저녁 준비하기, 책 읽어주기 등)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일들을 말이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숨통이 턱턱 막혀왔다.


홀로 외롭게 육아라는 전쟁터를 누비는 엄마들을 보면 내가 다 미안해진다. 그리고 이런 엄마들을 매일 만나면서 나 역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내에게 미안한 건 육아를 못해서가 아니라 육아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영상 한 편이면 다 이해될 것 같다. 책에도 소개된, 인터넷에서 한 번쯤은 봤을 <World's Toughest Job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이란 영상이다.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직업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5weVK8G-_I

<World's Toughest Job> 유튜브 영상



두 번째 공감) 자녀를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퇴근 후 잠시 아이와 놀아주는 것과 아이와 종일 함께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돌보는 일 자체도 힘들지만, 늘 건강한 감정과 정서로 아이를 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따라주면, 아이에게 버럭 성질을 내기도 하고 심지어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자녀를 공감하고 사랑으로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는다.


나는 아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난 이후에야 아이의 마음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건우는 네 살이 되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졌고 반대로 나는 독박 육아와 일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자 나는 별일 아닌 것으로 건우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중략)

잠이 와서인지 건우는 무조건 싫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럼 건우 잘래?”
“싫어.”

순간 화가 났다. 결국 나는 정색을 하고 “이놈! 아빠가 말하는데 뭐 하는 행동이야?”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건우는 평소와는 다른 아빠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면서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놀란 아이의 모습을 보자 금세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잠시 화를 참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실망스러웠다.


나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같이 하다가도 잘 안되면 아이 탓을 하고 짜증을 낸다. 사소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버럭 화를 낼 때도 있다. 내 감정을 다스리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일, 끝나지 않는 훈련이다.

 


세 번째 공감) 나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육아를 위해서 나 자신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먹고 자고 쉬는 것,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면서도 그 헌신의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한다.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 속에서 사라지고 잊히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인다. 육아 우울증이나 번 아웃(burn-out)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내 존재가 가장 무가치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내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기회가 찾아온다.


점점 더 작아져만 가던 내 모습이 싫어서 무작정 시작했던 유튜브가 자존감 있는 나로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도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만의 작은 도전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 순간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은 모두가 소중한 콘텐츠가 된다.

(중략)

육아 때문에 괴로워했던 나는 육아로 인해 새로운 일들을 계속 경험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작가가 되어 글을 써나가고 있다.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든 부모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이 하는 그 일이 가장 위대하고 소중한 자산이라고, 그러니 그 일에서 생기는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라고.

 


나의 경우는 유튜브가 아닌 독립출판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펀딩을 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긴 우울의 터널을 벗어났다. 절망의 시간이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시간이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 아빠 육아


작가의 말처럼 아빠가 육아를 ‘돕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함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육아의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아빠는 아내의 수고와 헌신을 이해할 수 없고, 자녀 사랑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아빠 육아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이자, 가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지름길이다. 그리고  공감에서부터 가족을 위한 진심 어린 배려와 사랑이 시작된다. 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다면 ‘아빠 육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마지막으로, 육아에 소홀한 남편 때문에 고민인 아내분들을 위해 작가의 조언을 나눈다. 아래층 '6세맘'을 위한 고민 상담 내용 중 일부다.


“이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육아에 필요한 아빠의 역할을 좀 나누어주세요. 일단 저녁에 목욕시키고 잠을 재우는 건 무조건 아빠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정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6세맘이 난색을 표했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아이가 잠을 자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곤란하다는 거였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설득했다.

“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아빠에게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세상에 엄마만 꼭 되는 일은 없어요. 엄마와 잘 자는 건 처음부터 엄마와 더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죠. (중략)”

내 이야기를 듣던 6세맘은 과연 가능할까라는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아빠에게도 책임을 조금씩 나누어주세요. 단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점차 아내가 그동안 혼자 육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 하지만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주말에 나가는 건 한시적으로 동의해주세요.”


자, 그 후로 6세맘네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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