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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an 29. 2020

이토록 산뜻한 이야기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온라인 서점의 소설 순위를 스크롤하다 끌리는 제목에 멈췄다. 알랭 드 보통이 쓴 동명의 책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제목은 날 끌었고 소개글에 나열된 수식어는 화려했다. ‘이토록 산뜻한 이야기’ ‘대형 신인’ ‘탁월한 재미와 개성’ 등등. 하지만 수식어는 거추장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구미가 당겼다.

책은 빨리 읽혔다. 참으로 산뜻했고 탁월한 재미와 개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 세대(작가를 포함한 소설의 주인공들)의 시선이 새롭다. 진지하지만 우울하지 않고,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다. 기성세대는 ‘N포 세대’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만, 정작 그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기어이 N가지 행복을 찾아간다.


표지에 등장하는 판교의 정경이 반갑다


세 가지 특별함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세 가지 점에서 특별하다.

첫째, 지금껏 이토록 공감되는 소설은 없었다. 에세이라면 모를까, ‘내 이야기’라며 공감하며 읽었던 소설은 처음이다. 장류진 작가는 2030 청년들의 삶과 그들의 뇌 속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청년들의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특히 ‘탐페레 공항’ ‘백 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일의 기쁨과 슬픔’ 은 20대부터 30대까지 일과 직장을 소재로 연결되는 생애주기형 작품들이다.

둘째, 경제적 약자가 가진 냉정한 자기 긍정이 낯설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등장하는 안나와 거북이알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의 부조리한 시스템이 양산하는 ‘일의 슬픔’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금세 ‘일의 기쁨’을 향해 몸을 돌릴 줄 아는 경쾌함이 부럽다. 거대한 구조적 부조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빠르게 판단하고 손에 잡을 수 있는 행복을 잽싸게 움켜쥔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전략이다.

셋째, 남성의 이중적이며 속물적인 욕구가 여성의 눈을 통해 벌거벗겨진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새벽의 방문자들’에 등장하는 남성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여자 주인공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매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성을 성적인 놀잇감 수준으로 보기도 하고 성매매를 위해 낯선 오피스텔을 찾기도 한다. 여성의 눈을 통해 읽히는 남성의 위선적이고 비루한 민낯이 꽤 고통스럽다.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한다


소설을 읽으며 ‘효율적인 삶’을 생각했다. 자본주의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돈을 벌라고 한다. 그게 효율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 적게 슬프고 많이 기뻐하는 것이 효율이다. 준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것은 최소한의 룰이다. 자본주의의 ‘효율’을 몸으로 체득했다면,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계산하고 효용 극대화를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윤리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는 ‘다소낮음’의 장우처럼 효율의 이치를 벗어난 삶에 연민을 느끼는 것 같다. ‘잘 살겠습니다’의 빛나 언니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응원하지만 그 삶에 대한 뭉클 대는 기대감은 없다. 오히려 ‘잘 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탐페레 공항’의 주인공처럼 효율적 선택에 익숙한 인물들로부터 작가는 따뜻함과 푹신함을 느낀다.

장류진 작가 자신의 삶도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몇몇 인터뷰를 통해 본 작가 역시) 고단한 직장인이지만 자본주의의 시스템 속에 주저앉기 보다 즐거운 취미와 자기 계발을 ‘효율적’으로 병행해온 결과! 지금의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이제는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 소설가를 시작하는 그녀의 삶이야말로 그녀의 소설이 그리는 롤모델일 것 같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극복해내는 삶! 이토록 산뜻한 이야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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